장기 파동론
Long wave theory
자본주의 경제에 10년 안팎의 경기순환보다 훨씬 긴, 40~60년 주기로 성장이 빠른 시기와 느린 시기가 번갈아 온다는 이론. 네덜란드 경제학자 판 헬데런과 더 볼프가 먼저 주장했고 소련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가 1920년대에 체계화해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트로츠키는 1923년 이런 긴 국면이 자본주의 내부의 법칙이 아니라 외부 조건으로 정해진다며 이를 「주기」라 부르는 데 반대했고, 에르네스트 만델은 1960~1970년대 이를 이윤율과 계급투쟁, 정치적 사건으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장기 파동론으로 되살렸다.
상세
경기는 몇 년 호황을 누리다 불황에 빠지고 다시 회복한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산업 순환은 대략 10년 주기였다. 장기 파동론은 그 위에 더 긴 물결이 있다고 본다. 수십 년 동안은 호황이 길고 강하며 불황이 짧고 얕다가, 그다음 수십 년 동안은 반대로 불황이 깊고 회복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론에 따라 한 물결은 40~60년이며, 고성장 국면과 저성장 국면이 번갈아 온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야코프 판 헬데런과 살로몬 더 볼프가 1913년과 1924년에 50~60년 주기를 주장했지만, 이 관찰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소련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였다. 그는 1926년의 『경제생활의 장기 파동』 등 1920년대 저작에서 물가와 이자율 통계를 근거로 19세기를 1790~1849년(전환점 1815년)과 1850~1896년(전환점 1873년)의 두 물결로 나누고, 1896년에 새 물결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상승 국면에는 물가가 오르고 이자율이 낮으며, 하강 국면에는 반대라는 것이었다. 1939년 조지프 슘페터는 이 파동을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 부르자고 제안했고, 그 원인을 증기기관·철도·전기 같은 기본 혁신의 군집에서 찾았다. 소련에서 콘드라티예프는 1930년 체포되어 1938년 처형되었고, 그의 학설은 「콘드라티예프시나」라는 이름으로 공격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쪽의 첫 응답은 레프 트로츠키의 1923년 글 「자본주의 발전 곡선」이었다.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3차 대회 뒤 콘드라티예프가 10년 안팎의 「소순환」 곁에 약 50년의 「대순환」 개념을 세우려 한다고 소개하면서, 그 통계를 나라별로, 그리고 세계시장 전체로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순환에도 소순환과 같은 「엄격한 법칙적 리듬」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형식적 유추에서 나온 그릇된 일반화라고 미리 반박했다. 50년 단위의 긴 구간은 자본주의 힘들의 내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이 흘러가는 통로인 외부 조건, 곧 새 나라와 대륙의 편입, 새 자원의 발견, 전쟁과 혁명 같은 사건으로 그 성격과 길이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주기 대신 자본주의 발전의 「곡선」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이 논의를 되살린 사람이 벨기에의 트로츠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이다. 만델은 1964년 《소셜리스트 레지스터》에 실린 「신자본주의의 경제학」에서 전후 장기 호황이 5년 뒤면 끝난다고 예측했고, 『후기자본주의』(1972)의 4장을 「장기 파동」에 바쳤으며, 1978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앨프리드 마셜 강연을 『자본주의 발전의 장기 파동: 마르크스주의적 해석』(1980)으로 펴냈다.
만델의 장기 파동은 다음과 같다. 182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시계열 자료에서는 정점에서 저점, 또는 저점에서 다음 정점까지 대략 20~25년 이어지는 긴 물결이 보인다. 상승 국면에는 경기순환의 호황이 더 강하고 불황이 더 약하며, 하강 국면에는 반대다. 그러나 만델은 콘드라티예프처럼 내생적으로 정해진 「장기 순환」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모든 호황은 평균 이윤율의 하락으로 끝나지만, 깊은 불황 뒤에 경제를 「자동으로」 회복시키는 지속적인 경제 기제는 없다는 것이다. 하강에서 상승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국가의 정책 결정, 계급과 계급 분파 사이 정치적 투쟁의 결과, 전쟁 같은 경제 밖의 요인이 결정적이다. 그래서 만델은 장기 파동을 기계적 순환이 아니라 그 전체로 설명해야 할 「특정한 역사적 시대」로 보았다. 그는 유기적 구성,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비율, 잉여가치율, 축적률, 자본의 회전, 생산재 부문과 소비재 부문의 관계라는 여섯 변수가 어느 정도 따로 움직이며 장기 성장과 이윤율의 무늬를 만든다고 보았다.
만델에게 장기 파동은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긴 물결은 세대마다 다른 삶의 경험과 교훈, 노동자 투쟁의 무늬를 만든다. 노동 수요가 높으면 노동자의 처지가 강해지고, 대량 실업 시기에는 약해진다. 만델은 경기의 오르내림과 나란히 「계급투쟁의 순환」을 말하기도 했고, 이 틀로 전후 장기 호황, 1974~1982년의 긴 세계 불황, 개발도상국 외채 위기, 1987년 주가 폭락을 분석했다.
장기 파동론은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파동의 원인과 각 물결의 시작·끝 연도에 합의가 없고, 비판자들은 있지도 않은 무늬를 읽어 내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근거로 한 예측이 맞은 일이 경제학에서 드물게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가와 일부 경제학자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썼다. 미국 경제학자 안와르 샤이크는 금으로 표시한 미국과 영국의 일반 물가 수준을 분석해 1895년, 1939년, 1982년 무렵을 저점으로 하는 세 장기 순환을 찾아냈다. 만델의 장기 파동론은 그의 후기자본주의론과 한 짝을 이루며, 로버트 브레너의 장기 하강론과도 자주 견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