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몬토프 습격
Mamontov Raid
1919년 8월 10일부터 9월 19일까지 콘스탄틴 마몬토프 장군의 돈 카자크 제4군단이 붉은 군대 남부전선의 후방을 휩쓴 기병 습격. 제8군과 제9군의 이음매를 뚫고 들어가 탐보프, 코즐로프, 옐레츠, 보로네시 등을 차례로 점령하고 철도와 창고를 부쉈다. 남부전선의 8월 반격을 크게 흐트러뜨렸지만 반격 자체를 막지는 못했고, 대규모 약탈로도 이름이 남았다.
상세
약 6천 명의 기병과 3천 명의 보병, 포 12문으로 이루어진 군단은 8월 10일 호표르강을 건너 제40사단을 무너뜨리고 후방으로 들어갔다. 마몬토프는 탐보프(8월 18일), 코즐로프(8월 23일), 레베단(8월 28일), 옐레츠(8월 31일), 카스토르노예(9월 6일)를 지났고 9월 11~12일에는 보로네시를 차지했다. 남부전선 사령부가 있던 코즐로프가 떨어지자 붉은 군대는 미하일 라셰비치를 사령관으로 하는 약 2만 3천 명의 「국내 전선」을 따로 꾸려야 했다. 군단은 포로와 현지 지원자로 툴라 의용 보병사단을 만들기도 했고, 9월 19일 노비오스콜 부근에서 백군 전선으로 돌아왔다.
평가는 엇갈렸다. 남부전선 사령관 예고로프는 뒤에 이 습격이 소총 사단 다섯과 부됸니의 기병군단 등을 끌어내고 철도와 보급을 무너뜨렸지만 기대한 농민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썼다. 데니킨은 마몬토프가 노획물 대신 적의 병력을 쳤다면 훨씬 큰 전환을 낳았으리라 보았고, 브란겔은 그가 싸움을 피하고 교회 기물까지 실어 왔다며 「범죄적」이라고 비난했다. 습격이 지나간 탐보프 지역에는 많은 무기가 남아 뒤의 농민 봉기에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