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주의
Maoism
마오쩌둥의 이론과 실천을 가리키는 이름. 중국공산당의 공식 용어는 1945년 당장에 명기된 '마오쩌둥 사상'이다. 농민에 기초한 인민전쟁과 농촌 근거지 전략, 신민주주의 혁명론, 모순론과 실천론의 철학, 문화대혁명기의 계속혁명론이 그 내용을 이룬다. 중소 분쟁 이후에는 소련 노선을 수정주의로 비판하며 갈라져 나온 국제 조류의 이름이 되어, 1960년대 이래 각국의 친중 정당과 무장운동이 이를 내걸었다.
상세
마오쩌둥 사상이란 무엇인가
중국공산당의 공식 정식화에서 마오쩌둥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 진리를 중국 혁명의 구체적 실천과 결합한 것이다. 1945년 제7차 당대회 당장에 지도 사상으로 명기되었다. '마오주의'라는 말은 주로 외부와 국제 운동에서 쓰는 이름이고, 중국공산당 자신은 개인의 사상이 아니라 당의 집단 지혜라는 이유로 이 표현을 쓰지 않아 왔다. 1981년의 역사결의는 마오의 공과를 나누면서도 마오쩌둥 사상 자체는 계속 지도 이념으로 유지했고, 이 구분은 오늘까지 중국 공식 이념의 골격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독자적인가
첫째, 혁명의 주력과 무대를 바꿨다. 도시 노동계급 봉기라는 러시아 모델 대신, 농민을 주력으로 농촌에 근거지를 만들어 도시를 포위하는 장기 인민전쟁 전략을 세웠다. 둘째, 단계론을 다시 썼다. 신민주주의론은 식민지·반식민지 나라의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도하되 광범한 계급 연합으로 수행하는 독자 단계로 설정했다. 셋째, 철학에서 모순의 보편성과 주요 모순 분석을 방법의 중심에 놓았고, 대중노선이라는 지도 방법을 정식화했다. 넷째, 사회주의 아래에서도 계급투쟁이 계속되며 당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계속혁명론이 문화대혁명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어떻게 국제 조류가 되었나
중소 분쟁에서 중국공산당이 소련 노선을 현대 수정주의로 규정하자, 각국 공산당의 친중 분파들이 갈라져 나와 새 정당을 만들었다. 알바니아가 국가 차원에서 중국 편에 섰고,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페루, 네팔 등지에서 마오주의 정당과 무장운동이 자랐다. 흐름은 한 번 더 갈라졌다. 마오 사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배신으로 규정한 쪽은 호자의 알바니아를 따르거나, 1980년대 이후 페루 공산당(빛나는 길)과 혁명적국제주의운동(RIM)을 거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주의'를 정식화했다. 네팔 마오주의자들의 무장투쟁과 집권, 인도 낙살라이트 운동이 이 계보의 현재형이다.
어떻게 평가되나
중국 안의 공식 평가는 1981년 결의의 틀, 곧 공적이 주요하고 오류는 부차적이라는 정식을 유지한다. 학술적 평가는 영역별로 갈린다. 반식민지 나라의 혁명 전략과 농민 문제를 마르크스주의 의제에 올린 이론적 기여를 인정하는 평가가 있고,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인적 희생을 이 사상의 주의주의적 핵심과 연결하는 비판이 있다. 국제 마오주의에 대해서도, 제3세계 해방운동의 이념적 자원이었다는 평가와 소수 종파와 장기 내전을 낳은 노선이었다는 평가가 함께 있다. 어느 쪽이든 20세기 후반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갈라놓은 가장 큰 분기선 중 하나였다는 점은 다툼이 없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Stuart R. Schram, The Thought of Mao Tse-tu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 Alexander C. Cook (ed.), Mao's Little Red Book: A Global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 Julia Lovell, Maoism: A Global History (Bodley Head,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