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ärzforderungen · 1848

3월 요구 (1848)

March demands (1848)

1848년 3월 혁명 초기 독일 각지의 인민 집회가 군주들에게 내건 핵심 요구. 1848년 2월 27일 바덴의 만하임 인민 집회가 처음 정식화했고, 장교를 자유롭게 뽑는 인민 무장, 무조건적 언론 자유, 영국식 배심 재판, 독일 의회의 즉시 수립 네 가지를 담았다. 많은 군주가 거의 저항 없이 이를 받아들여 자유주의 「3월 내각」을 세웠다.

상세

바탕은 1847년 9월 12일 오펜부르크 집회에서 헤커와 슈트루베가 내놓은 「바덴 인민의 13개 요구」였고, 슈트루베가 이를 카를스루에로 보낼 네 가지 「긴급 요구」로 압축했다. 비슷한 결의가 뷔르템베르크·헤센다름슈타트·나사우 등에서 잇따랐다.

뷔르템베르크·하노버·헤센다름슈타트처럼 군주가 빨리 물러선 국가에서는 배심 재판 도입, 검열 폐지, 농민 해방이 약속되었으나 상당수는 약속에 그쳤다. 공개 배심 재판은 반동기에도 살아남은 혁명의 지속적 성과로 꼽힌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