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해니즘
Marhaenism
수카르노가 정립한 인도네시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마르크스주의를 인도네시아의 조건과 문화에 맞게 개작한 노선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대신 농민·소상인·영세 자영업자 등 인도네시아 민중 대다수를 지칭하는 '마르헨(Marhaen)'이라는 범주를 혁명의 주체로 삼았으며,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를 기치로 사회민족주의·사회민주주의·문화적 신앙을 결합했다.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국민당(PNI)의 지도 이념이었고, 인도네시아 공산당(PKI)도 수카르노 정권 아래서 이 노선을 수용하며 대중조직을 건설했다.
상세
어원과 명명 논쟁
'마르헨(Marhaen)'이라는 이름은 수카르노가 1926~1927년경 서자바 반둥 부근에서 만났다고 주장한 농민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이 농민은 논밭과 괭이 같은 생산수단을 스스로 소유하고 자기 노동으로 경작했으나, 수확은 가족의 소박한 생활을 견딜 정도에 그쳤다. 수카르노는 이처럼 착취당하면서도 자립의 근거를 가진 소생산자를 프롤레타리아와 구별되는 혁명 주체로 보았고, 1930년 재판 진술 「인도네시아 고발(Indonesia Menggugat)」에서 처음으로 이 호칭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 유래담은 사료상 논쟁적이다. 영어 위키백과는 수카르노의 주장을 조작으로 단정하며, '마르헨'이 이미 사레카트 이슬람에 의해 평범한 민중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고 적는다. 인도네시아어 위키백과는 수카르노가 만난 농민의 이름이 '아엔(Aen)'이었고 언어 조정을 거쳐 '마르헨'이 되었다는 다른 전승을 전하며, 신질서 시기 정보장교였던 수기아르소 수로요가 마르헨이라는 농민의 실존 자체를 의심하고 마르크스-헤겔-엥겔스의 약어라는 설을 제기했다고 소개한다. 즉 어원에 대해서는 이름을 딴 농민의 실존과 그 출처 모두 확정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 내용
마르해니즘은 마르크스주의를 인도네시아의 성격과 문화에 맞게 적용한 것으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를 기치로 사회민족주의·사회민주주의·문화적 신앙을 결합한 투쟁 이데올로기다. 민족 통일·문화·집단주의 경제·민주적 권리를 강조하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비판했다.
경제 구상에서 마르해니즘은 자본주의 국가 모델을 평등과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다만 그 집단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마르크스의 구상과 달랐다. 각 개인과 가구가 토지·기계·도구 등 소규모 생산수단을 소유해 자립하고, 자본은 축적이나 증식이 아니라 생활 필요를 채우고 잉여를 낳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자는 자기 소비를 먼저 충족한 뒤 잉여를 시장에 내놓으며, 자기가 소비하지 않을 상품만 만드는 노동자는 다른 이의 생산요소로 전락해 시장에 예속되거나 착취당하기 쉽다고 보았다.
반식민 투쟁과 조직
마르해니즘은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족해방 운동의 실천 강령이었다. 수카르노는 민족해방 사상을 피억압 계급과 억압자 간의 항구적 투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과 결합할 것을 주장했고, 이에 따라 민족해방 투쟁은 식민 질서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는 혁명의 형태를 취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 국민당(PNI)의 지도 이념이었다. 영향력은 인도네시아에 그치지 않고 이웃 말라야의 좌익 민족주의에도 컸는데, 아마드 보에스타맘(Ahmad Boestamam)이 세운 말라야 말레이 민족당과 이후 인민당이 그 사례다. 인도네시아 공산당(PKI)도 수카르노 정권 아래에서 이 노선을 수용하며 대중조직을 건설했다.
국가 이념과 나사콤
식민지 시기의 반체제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해니즘은 독립 후 국가 이념과 권력 연합의 언어로 바뀌었다. 수카르노는 1960년 9월 30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판차실라가 미국 독립선언과 공산당 선언의 승화이며 냉전의 두 진영에 대한 제3의 대안이라고 규정했다.
1959년 교도민주주의 아래에서 시행된 나사콤(민족주의·종교·공산주의)은 민족주의·종교·공산주의 세 세력을 하나의 통치 블록으로 묶으려 한 구상이었다. 이 시기 대중동원의 언어로 기능한 이데올로기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결합을 내걸었으나, 실제 권력 구조에서는 수카르노 개인의 지도력과 각 세력의 임시적 타협을 매개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1965년 이후
1965년 9·30 사건과 그 진압, 1966년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 수립은 이 노선에 결정적 단절을 가져왔다. 신질서는 마르해니즘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계기를 제거하고 판차실라 민주주의 아래에서 마르해니즘을 탈급진화된 국가 이념으로 재편했다.
냉전 종식과 1998년 수하르토 퇴진 후에는 좌파적 계기를 복원하려는 소규모 정당 정치가 이어졌다. 1995년 수페니 푸조분토로(Supeni Pudjobuntoro)가 세운 인도네시아 민족연합은 1998년 5월 20일 인도네시아 국민당(PNI)으로 개칭했고, 1998년 12월 마르헨 대중 인도네시아 국민당(PNI-Massa Marhaen)과 합병한 뒤 당명을 인도네시아 국민당 마르해니즘(PNIM)으로 바꿨다. 이 정당은 2004년 총선에서 0.8%를 얻어 1석을 확보했으나 2009년 총선에서 0.31%에 그쳐 봉쇄조항에 걸려 의석을 잃었고, 수카르노의 딸 수크마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당수를 맡았다.
의의와 계보
마르해니즘은 마르크스주의를 비유럽 식민지의 농민·소생산자 조건에 맞게 개작한 대표적 사례로,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희박한 사회에서 혁명 주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좌익 민족주의와 제3세계 사회주의의 계보에서 함께 검토된다.
동시에 이 노선은 자립한 소생산자를 혁명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에, 후진국 혁명의 주체를 프롤레타리아에 둔 마르크스주의 정통과는 다른 위치에 놓인다. 그 이론적 급진성과 별개로 독립 후 실제로는 국가 권력의 통합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점도 이 노선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요소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article covering etymology (Sukarno's claimed encounter with a peasant named Marhaen near Bandung, 1926–1927), the ideological framework (social nationalism, social democracy, cultural divinity), rejection of liberalism and individualism, and the ideology's role as the PNI's guiding doctrine
- id.wikipedia.org Indonesian Wikipedia article confirming the peasant-Marhaen etymology, the 1930 Indonesia Menggugat speech as first public use, the ideology's core principles of small-scale self-sufficient production, and Sukarno's 1960 UN speech positioning Pancasila/Marhaenism as a third way between the Western and Eastern blocs
- 위키백과 (영문)
- id.wikipedia.org
-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