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티오피아 사회주의 운동(MEISON)
All-Ethiopia Socialist Movement (MEISON)
1970년대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이다.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축출 혁명을 지지했고, 데르그와 협력해 국가 기구를 장악했다가 1977년 중반부터 탄압받았다.
상세
결성과 초기 활동
1968년 8월 유럽 에티오피아 학생연합(ESUE) 제8차 대회에서 망명 중이던 급진 에티오피아 학생들이 비밀 조직으로 창설했다. 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Worku Ferede를 비롯해 Kebede Mengesha, Negede Gobeze, Andargachew Assegid, Fikre Merid, Hagos Gebreyesus, Haile Fida 등이 창립에 참여했고, Andreas Eshete, Haile Menkerios, Alem Habtu, Dessalegn Rahmato 등도 초기 주요 성원이었다. 디아스포라에서 ESUE를 장악했고 미국에서는 UPESUNA를 만들었으며 유럽에서 《New Ethiopia》를 발행했다. 대중조직으로 ISEANE, 에티오피아 여성혁명운동, 청년조직을 두었다.
1974년 혁명과 데르그 협력
1974년 혁명 후 MEISON과 EPRP가 양대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 성장했고, 유럽·북미·중동의 지도부와 성원들이 귀국했다. MEISON은 데르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에 따라 사회를 재편하는 권한을 최소한 당분간 용인하고 '통제된 민주주의'를 선호했으며, 이 때문에 데르그의 총애를 얻어 새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다. 반면 EPRP는 데르그를 반대하며 '인민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나중에는 멩기스투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MEISON은 데르그의 대중조직 기구인 POMOA(대중조직문제 잠정사무국, 1975년 12월 창설, 1976년 4월 21일 공개)와 그 15인 위원회, 즉 '정치국'을 장악했고, MEISON 지도자 Haile Fida가 POMOA 의장을 맡았다. POMOA는 케벨레를 감독 아래 민병대를 가진 자경단으로 전환시켰다. 데르그는 MEISON의 POMOA 지배를 경계해 파벌을 서로 견제하게 했다.
적색테러와 상호 대립
EPRP와 MEISON의 대립은 망명 학생정치 시절부터 이어졌고 귀국 후 폭력화했다. 1976년 EPRP가 MEISON 정치국 성원 Fikre Merid 등을 암살했고(9월 26일), 1977년 2월 25일에는 MEISON 성원이자 전에티오피아노동조합 지도자인 Theodore Bekele이 피살되었다. MEISON은 케벨레를 통해 EPRP 색출·진압을 도왔고, POMOA 산하 케벨레 민병대와 군대가 EPRP를 공격하면서 적색테러가 시작되었다. 적색테러 초기 MEISON은 데르그와 긴밀히 동맹해 EPRP로 의심되는 이들의 색출을 도왔고, 정치국 통제 아래 있던 방어대들은 오히려 데르그보다 MEISON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했다. 1977년 2월 MEISON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 연합(Imaledih)에 가입했다.
데르그의 MEISON 탄압
1977년 후반 데르그는 MEISON 성원들이 데르그보다 당에 더 충성한다고 우려해 MEISON을 공격했다. 1977년 7월 14일 POMOA를 더 엄격히 통제하라는 선언이 나왔고 정치국 인원이 15인에서 5인으로 축소되었다. 1977년 8월 MEISON 국내 지도부 대부분이 지하로 숨었고, 8월 19일 지도부와 500여 명의 간부가 지하로 들어갔으나 8월 26일 Haile Fida와 일부 지도자가 아디스아바바 외곽에서 체포되어 구 게비(데르그 본부)에 구금되었고 다른 지도자 일부는 현장에서 또는 이후 교전에서 살해되었다. Haile Fida는 얼마간 감옥에 있다가 처형되었으며, 사망 정황은 불명확하나 Andargachew Tiruneh는 체포 2년 후인 1979년에 살해되었다고 본다. Bahru Zewde에 따르면 '거의 모든' 지도부가 1977년 8월 시골로 후퇴하려다 체포되거나 살해되었고, 생존한 Negede Gobeze만 예멘으로 피신했다. 고위 성원들이 정부 요직에서 해임되고 농촌 MEISON 지지자들에 대한 유혈 탄압이 시작되었으며, EPRP 색출과 별개로 MEISON을 향한 제2의 테러가 1977년 후반 전개되었다.
이후와 해석의 쟁점
1977년 EMALEDH(에티오피아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 공동전선)가 결성되었을 때 MEISON은 곧 탈퇴했고, 1979년 COPWE(에티오피아 노동자당 조직위원회)로 전환될 즈음 Seded를 제외한 모든 파벌이 숙청되었다. 1980년대 초 생존한 MEISON 지도자들은 1970년대 실천에 대한 자기비판을 발표했고, MEISON은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일부 서술은 반(反)MEISON 단계를 '백색테러'라 부르지만 적색테러 문서는 백색테러를 EPRP의 암살 캠페인에 적용하므로 용어가 상충한다. 탄압 시점도 '1977년 중반부터'라는 서술과 '1977년 중반부터 1978년까지'라는 서술이 병존하고, 1968년 결성 당시 중국·마오주의 영향을 더 받았다는 서술과 Haile Fida가 소련식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웠다는 서술이 공존한다. 문서들은 지도부가 '체포되어 나중에 처형'되었다고만 서술할 뿐 재판 없는 즉결 처형으로 단정하지 않으므로 사망을 구금 중 처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적색테러와 멩기스투의 책임
적색테러는 데르그가 다른 경쟁적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들을 향해 벌인 폭력적 정치 탄압 캠페인으로 1976~1978년 계속되었고, EPRP에 대한 게릴라 암살 캠페인(데르그 관리·지지자 50명 살해)에 뒤이어 전개되었다. 멩기스투는 1977년 2월 3일 데르그 의장이 되었고 시위대에 'We are doing what Lenin did. You cannot build socialism without Red Terror'라고 말했다. 2006년 그는 적색테러 관련으로 에티오피아에서 궐석으로 집단살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1977년 초 멩기스투는 군부 내 온건파를 제거하고 소련과 조약을 맺었으며, 1977년 중반부터 1978년까지 소련 고문의 '중국·마오주의 세력 제거' 요청에 따라 MEISON을 공격했고 수천 명이 추가로 살해되었다는 서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