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ffwechselriss / metabolic rift

물질대사 균열

Metabolic Rift

자본주의적 생산이 인간 사회와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metabolism)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일으킨다는 이론.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대규모 토지소유와 도시-농촌 분리가 토양 영양분의 순환을 단절시켜 '사회적 물질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초래한다고 분석했으며, 존 벨러미 포스터가 1999년 논문에서 이 개념을 체계화하여 마르크스 생태학의 핵심으로 재구성했다. 자본의 무한축적 논리가 자연의 재생산 조건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환경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모순임을 밝히는 핵심 분석틀이다.

상세

개념의 형성

'물질대사 균열'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존 벨러미 포스터다. 포스터는 『마르크스의 생태학』을 비롯한 연구에서 마르크스가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대사가 자본주의적 농업 생산과 도시와 농촌의 분열로 말미암아 끊어진다고 이론화했다고 주장한다. 그 출발점은 『경제학·철학 초고』의 유적존재와 인간-자연 관계에 관한 초기 작업이며, 포스터가 인용하는 마르크스의 표현은 "생명 자체의 자연법칙에 의해 규정된 사회적 물질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에서의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다.

역사적 배경

마르크스가 물질대사를 다룬 글은 잉글랜드의 '제2차' 농업혁명(1815–1880) 시기에 쓰였다. 토양 화학이 발달하고 화학비료 사용이 늘었으며, 토양 고갈이 주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비료 수요가 뼈와 구아노 수입을 밀어냈다. 나폴레옹 전쟁터와 카타콤을 뒤진 약탈, 미국의 구아노 제도법(1856)이 그 결과였다.

포스터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리카도와 맬서스가 알지 못했던 농업화학에 기초했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농업과 생리학에 응용된 유기화학』(1840)은 식물 성장에서 토양 영양분이 하는 역할을 처음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1842년 리비히는 물질대사(슈토프베크젤)라는 용어를 신체의 물질 교환에서 자연 체계의 생화학적 과정으로 확장했다. 리비히는 도시 주민의 모든 고형·액상 배설물을 모아 농민에게 되돌릴 수 있다면 토양 생산력을 오랜 세월 거의 손상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영양 순환의 관점을 가졌다. 1862년판 『농업화학』의 비판적 서문은 마르크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는 리비히의 분석에 사회생태적 물질대사를 뿌리내리면서도 노동과정과 결부시켰다. 인간은 역사 내내 노동을 통해 자연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왔기에 사회와 자연의 물질대사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조건"이며, 비옥도는 토양의 자연적 성질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관계와 얽혀 있다는 것이다. 『자본론』 1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인구를 대중심지에 모아 인간과 대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하고 식량과 의복으로 소비된 토양 구성 원소의 환원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양을 약탈하는 기술의 진보"이며, '모든 부의 원천인 토양과 노동자'가 동시에 훼손된다.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도시는 자원과 폐기물의 흐름을 더 멀리서 찾고, 영양분은 도시로 흘러가되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은 땅으로 돌아가지 않아 '토양 약탈'이라는 일방적 이동이 생겨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도시의 오염 위기와 토양 고갈 위기를 연결했고, 균열은 도시와 농촌의 적대적 분리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구별과 논쟁

물질대사 균열론의 핵심 기여는 사회생태적 모순을 자본주의 발전에 내재하는 것으로 위치시키는 데 있다. 이후 사회주의자들도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확장했다. 니콜라이 부하린은 『역사적 유물론』(1921)에서, 카를 카우츠키는 『농업문제』(1899)에서 도시에 의한 농촌 착취와 '비료의 악순환' 문제를 다루었다. 제임스 오코너는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적 저평가가 경제 위기를 낳는다는 '자본주의의 제2 모순'을 제기했다.

포스터와 제이슨 W. 무어의 견해는 크게 갈린다. 무어는 사회 체계와 자연 체계의 구분이 경험적으로 거짓이고 이론적으로 임의적이라고 보며, 물질대사를 인간적 자연과 비인간적 자연의 관계로 파악한다. 포스터의 1999년 논문이 나온 지 9개월 뒤 무어는 물질대사의 기원을 19세기가 아니라 '긴' 16세기 자본주의의 부상에 두었고, 균열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주장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면서는 클라크와 요크의 '탄소 균열' 개념이 등장했다. 포스터를 비판하는 좌파 논자들은 물질대사 균열론이 자연과 사회를 나누는 '데카르트적 이분법'에 빠져 변증법적 분석을 위반한다고, 균열 개념이 생물물리적 환경의 변증법적 상호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포스터는 2013년 논문에서 마르크스가 사회가 그 안에서 발생하고 존재하는 더 넓은 자연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의 보편적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했다고 본다. 생산은 인간의 존재와 이 보편적 물질대사 사이를 매개했고, 사회와 생산은 인간 생명에 앞서 존재한 더 큰 대지의 물질대사에 내재하면서 그것에 의존했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자동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낳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노동 및 인구 분포를 다루는 계획과 조치, 토양의 회복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개념은 원래의 토양 비옥도와 자본주의적 농업 비판이라는 초점을 넘어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클라우젠과 클라크는 해양 생태학으로, 무어는 더 넓은 지구적 환경 위기로 확장했고, 피셔-코왈스키는 생물학적 물질대사 개념이 사회 체계에 적용된 과정을 추적했다.

사례

물질대사 균열 분석은 행성 경계, 탄소 물질대사, 토양 고갈, 비료 생산, 해양 물질대사, 어업 착취, 산림 파괴, 수문 순환, 산꼭대기 제거 채굴, 가축 관리, 농업용 연료, 글로벌 토지 약탈, 도시-농촌 모순 등에서 자본주의적 모순을 분석하는 데 쓰여 왔다. 마르크스 자신도 균열의 세계적 성격을 강조하며 "한 세기 반 동안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토양을 수출했으며 경작자들에게 고갈된 토양의 구성 원소를 보충할 수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시 계획 담론에서는 에너지·물·식량·폐기물 흐름을 '폐쇄 순환 체계'로 내부화하려는 '새로운 생태적 도시주의'가 등장했는데, 신자유주의적 조건 아래에서 진행되는 이 시도가 사회적·생태적 변혁을 함께 요구한다는 점이 쟁점으로 남는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the concept: origins in Marx's Capital, Foster's systematization, Liebig's soil chemistry, town-country division, and subsequent developments including carbon rift
  2. monthlyreview.org John Bellamy Foster, 'Marx and the Rift in the Universal Metabolism of Nature,' Monthly Review (Dec 2013): Foster's own account of the metabolic rift concept, its dialectical-materialist foundation, and the connection to Marx's labor theory of metabolism between society and nature
  3. johnbellamyfoster.org Foster, 'Marx's Theory of Metabolic Rift: Classical Foundations for Environmental Sociology,'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5(2), 1999: the foundational article that coined and developed the term
  4. 위키백과 (영문)
  5. monthlyrevie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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