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공산당
Mexican Communist Party
1919년 11월 24일 창당해 1981년까지 활동한 멕시코의 공산당. 62년 동안 합법과 비합법을 오가며 1922–1929년, 1935–1951년, 1978–1981년에만 공식 등록을 가졌고, 산업 노조와 농민·민중 운동 조직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1년 다른 좌파 조직과 합쳐 멕시코 통합사회당(PSUM)이 되었다.
상세
스페인어 출처에 따르면 멕시코 공산당의 형성은 미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멕시코에 와 있던 인도 독립운동가 마나벤드라 나트 로이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로이는 1918년 12월 멕시코 사회당 결성을 이끌고 총서기가 되었으며, 1919년 8~9월 전국사회주의대회에서 국민사회당이 생겨났다. 소련 사절 미하일 보로딘이 도착한 뒤 1919년 11월 24일 로이, 호세 앨런, 찰스 필립스가 멕시코 공산당을 만들고 코민테른에 가입하기로 했다. 1921년 오브레곤 정부가 외국인 당원을 추방하자 같은 해 12월 첫 정기대회가 당명을 확정하고 농촌·노동 기반 확대를 결정했다.
당은 1920년대 우르술로 갈반 등 농민 지도자를 통해 농촌에서 지지를 얻었고, 1922년 지방의회 의원과 상원·하원 의원을 냈다. 1926년 멕시코로 망명한 쿠바 공산주의자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는 이 당의 중앙위원이 되었으나 1928년 7월 트로츠키주의 혐의로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었다. 라사로 카르데나스 정부 시기(1934–1940)에 당은 코민테른의 권고에 따라 정부 정책에 협력해 전국농민연맹과 멕시코 노동자총연맹 결성에 참여했고, 1935년 합법 등록을 되찾았으며 1939년 초 당원이 30,125명에 이르렀다.
1951년 미겔 알레만 정부가 당의 등록을 취소했다.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의 대립 속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제명되었고,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는 공산주의 운동에 충실했다. 1950년대 당은 비합법 상태에서 발렌틴 캄파와 데메트리오 바예호가 이끈 1958–1959년 철도노동자 운동 등에 참여했다. 1956년 탈스탈린화를 시작했고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1968년 10월 2일 틀라텔롤코 학살 다음 날 정부의 탄압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유일한 정당이었다.
1976년 대선에서 당은 등록 없이 발렌틴 캄파를 후보로 내 약 100만 표를 얻었으나 무효 처리되었다. 1977년 정치개혁으로 1978년 5월 3일 등록을 되찾아 1979년 선거에서 연방 하원 18석을 얻었다. 1981년 제20차 대회는 다른 좌파 조직과의 통합을 의결했고, 1981년 11월 7일 멕시코 통합사회당(PSUM)이 결성되었으며 12월 18일 공산당은 등록을 새 당에 넘겼다. 1919–1921년 호세 앨런, 1929–1940년 에르난 라보르데, 1963–1981년 아르놀도 마르티네스 베르두고가 총서기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