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외상회의 (1947년 3-4월)
Moscow Conference of Foreign Ministers (March-April 1947)
1947년 3월 10일부터 4월 24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외상회의. 조지 마셜, 어니스트 베빈,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조르주 비도 등 4대국 외무장관이 참석해 독일·오스트리아 평화조약과 독일의 정치경제 재편을 협상했으나 43차례 회의 끝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4월 15일 마셜과 스탈린의 개인 면담에서도 진전이 없자 마셜은 유럽 부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귀국 직후인 4월 28일 라디오 연설에서 '환자는 가라앉고 있는데 의사들이 토론만 하고 있다'고 말하며 약 5주 뒤 하버드 연설의 직접적 계기를 마련했다.
상세
배경
1945년 8월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은 평화조약 초안 작성을 위해 미국, 영국, 소련, 중국, 프랑스 외무장관으로 구성된 외상회의(Council of Foreign Ministers, CFM)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1947년 봄 모스크바 회의는 제4차 회기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라는 유럽의 핵심 문제를 다루는 최초의 본격적 협상이었다.
회의 경과
회의는 모스크바 항공산업회관에서 총 43차례의 공식 회의로 진행되었다. 마셜은 존 포스터 덜레스, 찰스 볼렌, 루시우스 클레이 등을 대동했다. 협상은 크게 네 가지 쟁점에서 교착되었다. (1) 독일 중앙정부의 권한 범위: 소련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미국·영국은 연방제를, 프랑스는 더 극단적인 분권을 주장했다. (2) 경제 체제: 소련은 현물 배상을 고집했고 마셜은 독일의 식량 수입 감축은 대량 아사로 이어진다며 반발했다. (3) 배상 규모와 방식. (4) 석탄·철강 생산과 수출 배분. 마셜은 소련이 포츠담 합의에서 이탈했다고 비판했고, 몰로토프는 회의 실패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맞받았다.
결과와 의의
유일한 합의는 프로이센 자유주(Free State of Prussia)의 공식 해체뿐이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평화조약은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마셜은 귀국 후 "환자는 가라앉고 있는데 의사들이 토론만 하고 있다"고 진단했고,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 연설에서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경제부흥계획을 제안했다. 이 연설은 마셜 플랜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모스크바 회의의 결렬이야말로 그 직접적 계기였다. 소련은 같은 해 7월 파리 후속 회담에서 마셜 플랜을 거부하고 동유럽 국가들의 참여를 막았으며, 이로써 유럽의 분할선은 더욱 뚜렷해졌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the March 1947 Moscow CFM: attendees, dates, failure to agree on Germany/Austria treaties, agreement to dissolve Prussia
- 위키백과 (영문) The Moscow conference as the immediate trigger for Marshall's Harvard speech; Marshall's conclusion that 'a solution could not wait any longer'
- marshallfoundation.org George C. Marshall Foundation: detailed day-by-day account of 43 meetings, participants at the table, Marshall's meeting with Stalin on 15 April, and the 28 April radio address
- avalon.law.yale.edu Yale Avalon Project: full text of Secretary Marshall's 28 April 1947 report to the American people on the Moscow Conference, including 'the patient is sinking while the doctors deliber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