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바트
Musavat
1911년 바쿠에서 마메드 아민 라술자데 등이 비밀 조직으로 세운 아제르바이잔의 정당. 이름은 아랍어로 「평등」이라는 뜻이다. 1918–1920년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의 주도 정당이었고, 1920년 볼셰비키의 침공 뒤 다시 지하와 망명지에서 활동했다. 1989년 아제르바이잔에서 재건 운동이 일어나 1992년 정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상세
처음 이름은 무슬림 민주 무사바트당이었고, 초기 당원 가운데는 뒤에 아제르바이잔 SSR의 공산당 지도자가 되는 나리만 나리마노프도 있었다. 범이슬람주의와 범튀르크주의에 기울었으면서도 1차 세계대전 때는 차르 정부를 지지했다. 2월 혁명 뒤 합법 정당이 되어 1917년 6월 17일 튀르크 연방주의자당과 합쳤고, 10월 첫 대회에서 민족·영토 자치에 바탕을 둔 연방 민주 러시아, 8시간 노동제,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를 담은 76개 조 강령을 채택했다. 멘셰비키·사회혁명당·볼셰비키는 무사바트를 「베크와 칸」의 당이라 불렀지만, 소련 역사가 A. L. 포포프는 혁명 초기의 무사바트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입장에 서 있었다며 반동 정당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썼다.
자캅카스 세임에서 무사바트는 30석을 얻어 여당의 하나가 되었고, 이 무렵 오스만 보호 아래 무슬림 통일 국가를 지향했다. 1918년 5월 28일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이 독립하자 의회 다수당이 되었고, 라술자데가 12월 7일까지 첫 국가수반을 지냈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명이 이때 채택되었고 1919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1920년 4월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공화국이 무너진 뒤 당은 비밀 위원회를 꾸려 간자·카라바흐·자카탈라·랭캐런 봉기를 준비했으나, 소비에트 당국은 1923년까지 당원을 적어도 2,000명 체포했다. 남은 지도자들은 망명했고, 라술자데는 1923년 무사바트 해외국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