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론
Nanshin-ron (Southern Expansion Doctrine)
일본 제국의 대외 확장 전략 가운데 하나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을 일본의 세력 범위로 삼고 그곳의 자원과 영토 확장 가치를 무엇보다 크게 본 방침이다. 북진론(만주·시베리아를 중시)과 정면으로 맞서는 노선으로 주로 해군이 지지했으며, 육군의 북진론이 할힌골 전투(1939)의 패배와 중국 전선의 교착으로 좌절된 뒤 국가 정책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기초가 되어 태평양 전쟁기의 남방 침략을 뒷받침했다.
상세
기원과 발전
남진론은 메이지 시대(1880년대~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처음에는 남양으로의 통상·이민·식민을 중시하는 완만한 논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령이던 마리아나·캐롤라인·마셜 제도 등이 일본의 위임통치령(남양군도)이 되면서 해군 주도로 그 군사·경제적 가치가 강조되었다. 타이베이 제국대학을 거점으로 한 해군의 '남진 그룹'이 학술 보고서를 통해 남방 진출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북진론과의 대립
일본 육해군은 메이지 시기 이래 깊은 대립 관계에 있었고, 1930년대 초반부터 육군은 소련을 최대 위협으로 보고 북진론(만주·시베리아 진출)을, 해군은 미국과 영국을 염두에 두고 남진론을 각각 지지했다. 1936년 6월의 제국방위방침은 두 노선을 절충했으나, 할힌골 전투(노몬한 사건, 1939)에서 관동군이 참패하고 중국 전선이 교착에 빠지면서 북진론은 사실상 폐기되고 남진론이 우세를 점했다.
국가 정책으로의 확정과 결과
남진론은 1936년 '동아신질서'의 공포와 함께 공식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었고, 1940년에는 고노에 후미마로가 내건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기반이 되었다. 1940년 9월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점령에서 시작해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 개전에 이르기까지, 남진론은 일본의 남방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틀로 기능했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definition, origins, Navy support, adoption as national policy in 1936 (New Order in East Asia), and basis of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 위키백과 (영문) the rival northward doctrine backed by the Imperial Japanese Army and its abandonment after Khalkhin Gol (1939) and the Soviet-Japanese Neutrality Pact (1941)
- pacificatrocities.org Army-Navy rivalry, Navy promotion of Nanshin-ron, and the shift after the Battle of Khalkhin G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