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적 관념
Des Idées napoléoniennes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39년 런던에서 펴낸 정치 소책자 『나폴레옹적 관념』과 거기 담긴 보나파르트주의 강령. 나폴레옹 1세를 자유의 선구자로 그리며 보통선거와 국민적 이익을 앞세운 강한 정부를 내세웠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분할지 소유, 강한 정부, 관료제, 사제 지배, 군대 우위라는 「나폴레옹적 관념」은 모두 젊은 분할지의 관념이었으나 이제는 죽어 가는 분할지의 환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상세
루이 나폴레옹은 1833년 『정치적 몽상』, 1834년 스위스에 관한 정치·군사론에 이어 1839년 이 책을 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5만 부를 찍었고, 책은 세 판을 거듭해 여섯 나라 말로 옮겨졌다. 그는 이 책에서 나폴레옹 1세를 자유의 선구자로 그렸고, 그의 지지자 피알랭이 『런던에서 온 편지』로 뒤를 받쳤다. 이듬해 1840년 그는 불로뉴에 상륙해 두 번째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붙잡혔다.
책의 강령은 두 기둥, 곧 보통선거와 국민적 이익의 우위 위에 서 있었다. 그는 공화국의 이점은 누리되 그 불편은 없는 군주정, 전제 없이 강하고 무정부 없이 자유로우며 정복 없이 독립된 체제를 바랐고, 유럽 국민들의 더 넓은 공동체도 구상했다. 이 책은 「민주적 바탕을 가진 정부에서는 우두머리만이 통치 권력을 가진다. 도덕적 힘은 오직 그에게서 나오고, 미움이든 사랑이든 모든 것이 곧바로 그에게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썼다. 권위와 인민 주권을 묶은 이 생각이 뒷날 제2제정의 기본 틀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이 제목을 비꼬는 말로 썼다. 의회 공화국 시절 보나파르트가 장관들 등 뒤에서 「자기의 ‘나폴레옹적 관념’을 가지고 놀 때마다」 장관들이 의회 연단에서 그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7장에서는 이 말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첫째 「나폴레옹적 관념」은 분할지 소유인데, 19세기 초에 농민을 해방하고 부유하게 하던 이 소유 형태는 이제 농민을 노예로 만들고 빈곤에 빠뜨리는 법칙이 되었다. 둘째는 강하고 제한 없는 정부, 셋째는 금줄 장식을 두른 거대한 관료 집단, 또 하나는 통치 수단으로서의 사제 지배이며, 그 정점은 군대의 우위다.
마르크스의 결론은 이렇다. 「보다시피 ‘나폴레옹적 관념’은 모두 아직 덜 발전한, 젊고 싱싱한 분할지의 관념이다. 수명이 다한 분할지에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분할지가 죽어 가며 보는 환각일 뿐이다.」 나폴레옹 1세 때 세금은 새 시장과 대륙의 약탈로 이자까지 붙어 돌아왔지만, 이제 세금은 농민의 마지막 밑천을 앗아 갈 뿐이고, 군대는 농민의 영웅이 아니라 농민을 몰이사냥하는 헌병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