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주의
National Democracy
탈식민지 제3세계 국가가 자본주의를 건너뛰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 단계로 소련이 1950년대 후반 정립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개념이다. 카렌 브루텐츠가 이끄는 중앙위 국제부 특별작업반이 초안을 만들었고, 1960년 모스크바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에서 공식 노선으로 채택되었다. 민족민주주의는 민족해방투쟁, 민족민주혁명, 민족민주국가의 3단계로 구성되며, '비자본주의 발전 경로' 및 '사회주의 지향' 개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소련의 제3세계 외교·원조 정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상세
개념의 구조
민족민주주의는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가운데 제국주의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을 설명하는 틀이다. 민족해방투쟁은 독립 국가의 수립을, 민족민주혁명은 새로 독립한 국가에서 혁명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민족민주국가는 식민지 이전 단계나 자본주의 단계의 생산양식에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학자 이리나 필라토바에 따르면 이 개념은 두 단계 구상, 곧 민족해방투쟁(이 시점에서는 민족민주혁명과 동의어)과 사회주의 건설의 개시로 정리되며, 물적 토대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선진적인 상부구조가 먼저 세워질 수 있고 그 상부구조가 물적 토대를 끌어올려 사회주의 건설을 앞당긴다는 발상이었다.
계급 분석
이 틀은 3세계 사회의 계급 구성을 다시 분석하는 작업과 결합했다. 로스티슬라프 울리야놉스키 중앙위 국제부 부부장은 이들 사회의 토대가 자본주의 이전, 대체로 봉건제 이전의 사회구조이며 부르주아 관계는 상품 생산과 화폐 유통 영역에 국한되어 겉으로만 덮여 있다고 보았다. 카렌 브루텐츠는 이러한 사회가 계급 관계보다 가족·부족 관계, 카스트 편견, 종교적 소속에 바탕을 둔다고 지적했다.
이 관점에서 민족 부르주아는 서구의 부르주아와 달리 자본주의적 소유자가 아니며 착취 계급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대다수가 상업·서비스업·환전·대부업에 종사하는 소상인 규모였고, 대기업은 서구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외국 자본과 식민 국가의 차별 정책이 오히려 이들을 민족해방투쟁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브루텐츠의 설명이었다. 소부르주아는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평가되면서도 사적 소유에 뿌리를 둔 이중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었다. 노동계급의 규모가 작다는 점은 브루텐츠 자신이 지적했다. 그는 임금 노동자 수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준해 계산하여 노동계급의 역할을 부풀리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다른 개념과의 관계
민족민주주의는 혁명적 민주주의 및 비자본주의 발전 경로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1960년 모스크바 회의는 민족민주국가를 혁명적 민주주의 활동의 정치적 형태로 규정했고, 학자 이리나 필라토바는 무엇이 혁명적 민주주의이고 어느 나라가 민족민주국가인지를 판정할 만한 실질적 기준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1960년대 초부터 이른바 사회주의 지향 국가들이 실제로 나타났고, 원조와 외교적 승인이 이 틀에 따라 이루어졌다.
민족민주주의는 중국 공산당의 신민주주의와 구별해야 한다. 마오쩌둥은 1940년부터 신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구민주주의 혁명을 부르주아가 이끄는 낡은 혁명, 신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가 이끄는 진정한 민주주의 혁명으로 구분했고, 이는 식민지·반식민지 국가마다 고유한 경로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동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동일한 연합 구상을 가리키는 말로 인민민주주의가 사용되었다.
적용과 확산
이 개념이 가장 오래 유지된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아프리카민족회의는 1955년 채택한 자유헌장과 1969년 모로고로 회의의 전략·전술 문서를 거쳐 민족민주혁명을 공식 강령으로 삼았고, 이는 민족민주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책 분석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1980년대 남한 민주화운동 진영이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 또는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채택하면서 민족민주라는 용어가 운동권의 정파 구분에 쓰이게 되었다.
한계
민족민주주의는 냉전 시기 소련이 3세계 해방운동과 관계를 맺는 데 쓰인 이론적 틀이었다. 민족해방투쟁과 민족민주혁명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주의 지향 국가에 대한 원조가 실제로 국가 건설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사례별로 검증될 문제로 남아 있다. 소련이 1980년대 후반 이 노선을 폐기하면서 관련 연구·원조 체계도 함께 정리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overview of the concept, its origins in Brutents's CPSU special group, and adoption at the 1960 Moscow meeting
- irr.org.za documents the Soviet origins of the ANC's NDR, citing Brutents's special committee and the defining features of 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s
- decolonialcentre.org details non-capitalist development as the Soviet strategy tied to national democracy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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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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