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민족민주혁명 강령(1976)
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 Programme (1976)
에티오피아의 집권 군사평의회(더르그, 임시군사행정평의회)가 1976년 4월 공포한 국가 강령이다. 특정 정당이 아니라 국가가 채택한 문서로, 에티오피아 혁명에 처음으로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했다. '과학적 사회주의' 채택과 인민민주공화국 건설을 선언하고 대중적 국유화, 농촌·도시 토지개혁, 농민 및 도시 이웃 조직(케벨레) 결성, 대중군 창설, 노동조합 재편, 맑스-레닌주의 선구 정당 건설을 규정했다.
상세
제정과 공포
강령은 1976년 3월 말 임시군사행정평의회(더르그)의 정치조직준비위원회(POPC)와 더르그를 통과해 4월 20일 공포되었다. 같은 날 대중조직문제 임시사무국(POMOA) 창설 특별령이 발표되었다. 2차 출처 가운데에는 공포일을 4월 21일로 적는 곳이 있어 일자에는 이견이 있다.
주요 조항
강령은 사회주의 지향의 혁명적 민족민주주의 프로그램으로, 노동자·농민·소부르주아·군인의 동맹을 기초로 삼았다. 주요 조항의 하나는 맑스-레닌주의 선구 정당의 필요성이며, 이를 건설할 기구로 POMOA가 설정되었다. 민족자결권은 지역 자치로 한정되었고 분리·독립은 승인되지 않았다.
POMOA
POMOA는 정당이 아니라 '인민혁명전선'으로 구상되었고 5개 맑스-레닌주의 조직(MEISON, Waz League, Malerid, Echat, Seded)이 참여했다. MEISON이 우세했으며 Haile Fida가 의장, Sennai Likkai가 부의장을 맡았고, 지배기구는 15인 위원회(일명 '정치국')였다. POMOA는 지방 조직을 건설하고 케벨레를 장악했으며 약 4,000명의 정치 간부를 배출하고 격주 신문 『Abiotawit Ityopya』를 발행했다. 1979년 12월 COPWE 창설과 함께 해산되었다.
좌파와의 관계
강령은 급진적 시민 좌파가 요구한 변화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 메리프(1982)는 '대부분의 EPRP 강령이 NDR에 반영되었다. 다만 민간 정부 복귀에 대한 약속만 빠졌다'고 평가했다. 강령은 민간 정부로의 전면적·즉각적 복귀를 보장하지 않았고, 그 결과 더르그와 EPRP의 핵심 분쟁점은 해소되지 않았다. EPRP와 MEISON의 입장 차이는 전술적이었다. EPRP는 즉각적인 민간 정부 수립을 요구했고, MEISON은 군사정권이 '진보적'일 수 있다며 비판적으로 협력했다. 강령은 EPRP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EPRP의 군사·정치 활동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EPRP는 1975~76년 zemecha, CELU, POMOA에 침투했고 1976년 9월 26일부터 POMOA 간부 암살 캠페인을 시작했다.
충돌의 격화
1976년 중반~말 충돌이 격화되어 1976년 7월 화해파가 더르그에서 제거되고, 9월 이후 EPRP의 암살 캠페인과 이에 대한 '적색테러'로 이어졌다.
종료와 구별
강령 자체가 특정 연도에 폐기된 것은 아니고, 1984/87년 노동당 창당과 1987년 인민민주공화국(PDRE) 수립 과정에서 후속 문서로 대체되었다. 문서 자체의 종료연도는 확정할 근거가 부족하다. 같은 이름의 '민족민주혁명' 일반 개념 및 후대의 에티오피아민족민주혁명(EPRDF)과 구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