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작업장 (1848)
National Workshops (1848)
1848년 2월 27일 임시정부가 파리의 실업자에게 일을 주려고 열어 6월 21일 폐쇄한 공공사업 기구다. 등록자가 3월 15일 6천 명에서 4월 말 11만 7천 명으로 불어났으나 일감이 모자라 대부분 하루 1.5~2프랑의 수당을 받으며 놀았다. 보수파 의회가 결정한 폐쇄가 6월 봉기를 불렀다.
상세
2월 25일 무장 노동자들이 임시정부에 「노동의 조직」과 「노동권」을 요구하자 정부는 「노동으로 노동자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법령을 냈고, 그 집행을 공공사업장관 마리에게 맡겼다. 국립 작업장은 루이 블랑이 『노동의 조직』에서 구상한 노동자 자주관리의 「사회 작업장」과 달리 구체제의 자선 작업장을 본뜬 것이었다. 기술자 에밀 토마가 이끈 작업장은 군대식으로 편성되어 11명 분대에서 901명 중대까지 올라갔고, 여성 노동자 2만여 명도 일했다. 노동자들은 실제로는 나흘에 하루꼴로 일했고 도로 포장, 나무 다시 심기, 참호를 팠다 메우는 일을 했다. 비용은 정부 예산의 약 1%였지만 팔루 백작은 「하루 17만 프랑짜리 조직된 파업」이라 비난했다. 5월 15일 이후 보수파가 공세를 펴 6월 21일 18~25세는 군대에 입대하고 나머지는 지방으로 떠나라는 폐쇄 법령이 나왔다. 마르크스는 정부가 작업장으로 노동자 예비군을 만들려다 오히려 「반란의 군대」를 만들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