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프맨
NEPman
신경제정책(네프) 시기에 합법화된 사적 상업으로 부를 쌓은 상인, 중개인, 소기업가 계층. 당 내부에서는 자본주의 부활의 상징으로 경계되었고, 1920년대 말 네프 폐기와 함께 과세와 체포, 재산 몰수로 소멸했다.
상세
등장 조건
1921년 사적 상업이 합법화되면서 유통은 빠르게 민간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가 상업 기구와 협동조합은 도매에서 우위를 유지했지만, 소매 단계에서는 민간 비중이 1923년경 4분의 3 수준에 이르렀다. 1922년 민법이 임대와 중개, 소규모 제조업을 허용하면서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네프맨이라 불린 층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시장 노점과 상점을 운영하는 소매상, 국영기업과 농촌 사이에서 곡물과 원료를 중개하는 상인, 공장 설비나 점포를 임차해 운영하는 임대업자, 수십 명 규모의 작업장을 가진 제조업자가 함께 이 이름으로 불렸다. 다수는 전쟁 전 상인 가문 출신이거나 내전기 암거래에서 자본을 만든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위치
네프맨은 경제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배제되었다. 상업 소득에는 높은 누진세가 부과되었고, 사적 영업자는 선거권을 박탈된 계층으로 분류되어 소비에트 선거에서 배제되었으며 주택 배정과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에서도 불리했다. 합법적 영업과 시민권 박탈이 공존하는 이 이중 지위가 네프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문화적 표상은 대체로 적대적이었다. 풍자 잡지와 포스터는 네프맨을 살찐 투기꾼으로 그렸고, 조셴코와 일프, 페트로프의 소설은 이 시기 사적 영업자의 세계를 조롱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당 내부에서 네프맨은 자본주의 부활의 지표로 읽혔고, 이 인식은 네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소멸
1927년부터 조세와 행정 압박이 강화되었다. 1928년과 1929년에는 형법의 투기 조항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상업 활동 자체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되었고, 점포 폐쇄와 재산 몰수, 체포가 이어졌다. 소매에서 민간 비중은 1928년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1930년대 초에는 사실상 소멸했다.
네프맨이라는 말은 이후 소련 어휘에서 사라졌지만, 사적 영업자를 범죄자로 규정하는 언어는 투기꾼이라는 낙인으로 남아 소련 말기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협동조합과 개인 영업이 다시 허용되었을 때 이를 네프의 재개로 부르는 논의가 나온 것도 이 기억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