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년 (잡지)
New Youth (magazine)
1915년 9월 천두슈가 상하이에서 《청년잡지》로 창간하고 1916년 9월 이름을 바꾼 중국의 잡지. 신문화운동의 중심 매체로 「민주와 과학」, 반유교, 백화문 문학을 이끌었고, 1917년 베이징대학으로 옮겨 교수들이 편집했다. 1920년 9월부터 공산주의를 공공연히 지지했으며 1923년 6월 중국공산당의 이론 기관지가 되었다가 1926년 폐간되었다.
상세
창간: 천두슈는 군익서사가 매달 200위안의 원고·편집료를 대는 조건으로 1915년 9월 15일 《청년잡지》를 냈다. 창간호의 「경고청년」은 자주적·진보적·진취적·세계적·실리적·과학적이 되라는 여섯 가지를 청년에게 요구했다. 1916년 9월 상하이 기독교청년회가 이름이 비슷하다고 항의하자 《신청년》으로 바꾸었다.
베이징대 시기: 1917년 1월 천두슈가 베이징대 문과대학장이 되면서 잡지도 베이징으로 옮겼다. 제6권은 천두슈·첸쉬안퉁·가오이한·후스·리다자오·선인모가 돌아가며 편집해, 안후이 출신 문인들의 지방 잡지가 전국 잡지로 바뀌었다. 후스의 「문학개량추의」(1917.1)와 문학혁명론, 정조 문제를 다룬 글, 루쉰의 「광인일기」(1918.5)·「공을기」·「약」, 천헝저의 동화가 실렸고, 마오쩌둥도 1917년 4월 이 잡지에 첫 글을 실었다. 1919년 5월 1일에는 리다자오가 편집한 마르크스주의 특집호가 나왔다.
공산주의 기관지로: 1920년 천두슈가 보이틴스키와 접촉한 뒤 잡지는 마르크스주의 색채를 띠었고, 편집부가 상하이로 돌아간 9월 1일호부터 공산주의를 공공연히 지지했다. 후스는 이 방향이 분명해지자 떠났다. 1923년 6월호부터 중국공산당의 공식 이론지가 되었고, 1926년 국민정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수많은 청년과 뒤의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 잡지를 읽고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