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ntervention Committee / Comité de No Intervención · 1936.09.09–1939

불간섭 위원회 (스페인 내전)

Non-Intervention Committee

스페인 내전에 외국이 무기와 병력을 보내지 못하게 한다는 1936년 8월 불간섭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려고 영국과 프랑스 주도로 런던에 세운 국제위원회. 1936년 9월 9일 처음 모였고 독일·이탈리아·소련을 포함해 27개국이 참여했다. 그러나 독일·이탈리아는 처음부터 반란군을 도왔고 소련도 10월부터 공화국을 지원해 협정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합법 정부인 공화국만 무기 구입 길이 막혀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상세

협정과 위원회

불간섭은 프랑스와 영국 정부의 공동 외교 제안으로, 유럽 파시즘에 대한 유화 정책의 일부였고 스페인에서의 대리전이 유럽 전체의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1936년 8월 7일 일방적으로 불간섭을 선언했다. 사회당 출신 총리 레옹 블룸은 공화국을 공공연히 도우면 프랑스 안에서 내전이 날 수 있다고 두려워했고, 영국의 지지에 기대고 있었다. 위원회는 9월 9일 런던에서 처음 모였으며 중립 정책 때문에 빠진 스위스를 뺀 유럽 모든 나라가 참석했다. 소련 대표는 이반 마이스키였다. 영국 대표 플리머스 백작은 이탈리아·독일에 유리하게 회의를 자주 미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패

1937년 초에는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물자를 통제하는 계획이 나왔지만, 이는 공화국을 심각한 국제적 고립과 사실상의 경제 봉쇄에 빠뜨렸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찰자들도 이를 반란군에 대한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지원이라고 조롱했다. 독일·이탈리아·소련은 협정을 줄곧 어겼고 프랑스도 때때로 어겼으며, 영국만 대체로 지켰다. 외국 의용군 문제는 오래 논의되었으나 결과가 거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9년 2월 27일 프랑코 정부를 승인했고, 클레먼트 애틀리는 이를 「2년 반 동안의 위선적인 불간섭 시늉」이라고 비판했다. 역사가 사비에르 이루호는 위원회의 목적이 불간섭이 아니라 세계대전을 피하려고 독일·이탈리아의 개입을 관리하는 데 있었다고 본다.

공산주의 운동에서의 의미

소련은 처음에 불간섭에 동의했다가 10월부터 공화국에 무기를 보냈다.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은 불간섭을 파시스트 국가들의 개입을 눈감아 주는 「위선」이라고 공격하며 공화국 지원을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시금석으로 삼았다. 블룸 정부가 불간섭을 고수한 일은 프랑스 인민전선 안에서 사회당과 공산당 사이의 갈등이 되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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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es.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