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휴가와 주 40시간제를 남긴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자 총리
「집권하는 동안 나는 집무실을 거의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밖에 나가 파리 교외를 지나며 고물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2인승 자전거의 행렬을, 맞춰 입은 스웨터 차림의 노동자 부부들을 보았을 때, 그래도 내가 어렵고 어두운 삶들에 일종의 갠 하늘을, 한 줄기 트임을 들여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옴 재판 진술, 1942년 3월
드레퓌스 사건으로 정치에 들어와 1920년 투르 대회에서 다수파의 코민테른 가입에 맞서 사회당(SFIO)의 「낡은 집」을 지킨 지도자. 1936년 인민전선 정부의 총리로 마티뇽 협정을 중재하고 2주 유급휴가와 주 40시간제를 입법했으며,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자 총리이자 최초의 유대인 총리로서 극우의 표적이 되었다. 1940년 페탱 전권 위임에 반대한 80인 중 한 명으로 비시 정권의 리옴 재판에서 피고석을 인민전선 변호의 연단으로 바꾸었고, 부헨발트 억류에서 살아 돌아와 1946년 말 과도정부 총리를 지냈다.
경력 연표
- 1894–1906국사원 법관이자 문예비평가,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조레스를 따라 사회주의 운동에 입문
- 1914–1919전시 사회당 각료 비서실장, 종전 후 하원의원 당선
- 1920.12투르 대회에서 다수파의 코민테른 가입에 맞서 「낡은 집」 사수 연설
- 1921–1936SFIO 재건, 『르 포퓔레르』 주필, 원내 지도자
- 1936.02왕당파 행동대 카믈로 뒤 루아에게 폭행당해 중상
- 1936.06–1937.06인민전선 정부 총리, 마티뇽 협정·유급휴가·주 40시간제
- 1938.03–04제2차 블룸 내각, 상원의 벽에 다시 막혀 한 달 만에 붕괴
- 1940.07비시에서 페탱 전권 위임에 반대표를 던진 80인 중 한 명
- 1942–1945리옴 재판에서 인민전선을 변호, 이후 부헨발트 인근 특별수용소 억류
- 1946.12–1947.01과도정부 총리, 전후 재건과 미국 차관 교섭(블룸-번스 협정)
- 1950.03주이앙조자스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 1934.01–071934년 2월 6일 파시스트 폭동SFIO 지도자2월 12일 총파업에 사회당을 이끌고 참여했다. 두 해 뒤 그 합류의 끝에서 인민전선 정부의 총리가 된다.
- 1934–1938프랑스 인민전선과 1936년 총파업인민전선 정부 총리권력의 「정복」이 아니라 「행사」를 내걸고 마티뇽 협정을 중재했으며, 유급휴가와 주 40시간제를 입법했다. 스페인 불개입과 상원의 벽 앞에서 1년 만에 물러났다.
- 1936–1939스페인 내전불개입 정책을 택한 프랑스 총리처음에는 공화국에 무기를 보내려 했으나 영국의 압력과 연정 내 반대에 밀려 1936년 8월 불개입을 제안했다. 이후 국경을 눈감아 주는 「완화된 불개입」으로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