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독일 연방
North German Confederation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이 마인강 이북의 독일 국가들을 묶어 1867년 7월부터 1870년 12월까지 존속시킨 연방 국가. 프로이센 국왕이 국가원수, 비스마르크가 연방 재상이었고, 각국 정부가 대표를 보내는 연방참의원과 남성 보통선거로 뽑는 제국의회를 두었다. 보불전쟁 중 남독일 국가들이 가입하면서 1871년 1월 1일 독일 제국이 되었다.
상세
1866년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한 달 남짓 만에 이겼고, 프라하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 문제에서 손을 떼고 프로이센이 이끄는 북독일 연방을 받아들였다. 1866년 8월 18일 프로이센과 북·중부 독일의 15개국이 북독일 연방 조약을 맺었고, 프로이센은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를 아예 합병했다. 1867년 2월 12일 제헌 제국의회 선거(297석)에서는 국민자유당이 78석으로 제1당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의 지침에 따른 헌법 초안은 4월 16일 230대 53으로 통과되었고, 진보당과 다수의 가톨릭 의원, 아우구스트 베벨, 폴란드계 의원들이 반대했다. 헌법은 7월 1일 시행되었고 2주 뒤 빌헬름 1세가 비스마르크를 연방 재상에 임명했다.
주권은 각국 정부가 대표를 보내는 연방참의원에 있었고, 남성 보통선거로 뽑힌 제국의회가 입법에서 그와 동등하게 참여했다. 재상은 프로이센 국왕이 임명하고 국왕에게만 책임을 졌다. 프로이센은 연방 영토와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했고, 연방참의원 43표 가운데 17표를 가졌으며 3분의 2가 필요한 개헌을 혼자 막을 수 있었다. 3년 반 동안 연방은 거주 이전의 자유, 공통 우편과 여권, 유대인을 포함한 종교의 평등(1869), 미터법, 형법 통일(1870)을 입법했고, 결사의 자유를 담은 영업법도 만들었다. 프로이센은 관세동맹을 재편해 남독일 국가들을 묶었고, 1868년 관세의회 선거를 치렀다.
노동운동도 이 의회에서 처음 의석을 얻었다. 1867년 2월 반프로이센 급진민주파와 사회주의자의 연합인 작센 인민당이 두 명을 당선시켰고, 그 가운데 베벨은 독일 의회에 들어간 첫 마르크스주의자였다. 8월 선거에서는 작센 인민당이 3석, 전독일노동자협회가 2석을 얻었다. 부르주아 급진민주파와 사회주의자의 결별은 1869년 아이제나흐에서 사회민주노동자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1870년 보불전쟁 중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센다름슈타트가 11월 조약으로 연방에 가입했다. 12월 8일 연방참의원이 이름을 「독일 제국」으로 바꾸고 프로이센 국왕을 독일 황제로 하기로 의결했고, 12월 10일 제국의회가 이를 승인해 1871년 1월 1일 시행되었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에서 황제 선포식이 열렸고, 북독일 연방 헌법을 거의 그대로 옮긴 독일 제국 헌법이 5월 4일 시행되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내전』에 실린 인터내셔널 총평의회의 둘째 담화에서, 빌헬름 왕이 북독일 의회 개원 연설에서 프랑스 인민이 아니라 프랑스 황제와 싸운다고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고, 제2제정이 북독일 연방을 자신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듯이 전제 러시아도 프로이센이 이끄는 독일 제국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