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옉트 D (Object D)
Object D
소련이 1956년 1월 30일 각료회의 법령으로 승인한 최초의 본격적 과학위성 계획. R-7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다섯 번째 탑재체 유형으로 기획되어, 대기 밀도·자기장·태양복사·우주선 등을 측정하는 12종의 과학장비를 갖춘 1톤 이상의 복합 과학실험실이었다. 그러나 장비 개발 지연으로 1957년 초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이 계획을 보류하고 단순화된 PS-1(스푸트니크 1호)을 먼저 쏘기로 결정했으며, 오브옉트 D는 결국 1958년 5월 15일 스푸트니크 3호로 궤도에 올랐다.
상세
149-88ss 법령과 설계 요구
1956년 1월 30일자 각료회의 법령 제149-88ss호는 자세제어 장치 없는 위성을 1957~1958년에 개발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위성 질량은 R-7의 능력에 맞춰 1,000~1,400kg으로 제한됐고, 그중 200~300kg을 과학장비에 배정했다. 법령은 종합적인 과학 관리를 소련 과학아카데미에, 기체 제작을 국방공업부 산하 OKB-1에, 무선·원격측정 계통을 무선공업부에 각각 맡겼다.
법령은 또한 로켓의 다른 탑재체용으로 개발된 부품을 오브옉트 D에 전용해 시간과 자원을 아끼도록 허가했다. 같은 법령은 자세제어가 가능한 오브옉트 OD의 예비 연구도 승인했는데, 이 계획은 훗날 궤도에서 귀환하는 유인 우주선의 토대가 됐다.
12종의 장비, 하나의 궤도 실험실
오브옉트 D는 대기 밀도와 이온 조성, 자기장, 태양복사, 우주선을 측정하는 다기능 실험실로 기획됐다. 법령은 과학아카데미에 지구물리학,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의 네 분야 연구를 맡겼다. 기내에는 12종의 과학장비가 실렸고, 이들의 작동 순서는 프로그램 시한 장치가 통제했다. 지상 추적소의 사각지대에서 원격측정 자료를 기록하기 위해 기내에 자기테이프 기록기를 처음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발사 직전 고장이 발견되어 기록기는 작동하지 않은 채 비행에 들어갔다.
PS-1으로의 전환
계획은 1956년 중반부터 차질을 빚었다. 하청업체의 납품이 늦어졌고 일부 부품은 사양에 맞지 않았다. 1956년 11월 말 코롤료프는 R-7 엔진의 실측 비추력이 계산치에 못 미친다는 결과와 미국의 발사 가능성에 대한 압박 속에서 계획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같은 해 11월 말 미하일 티호프라보프가 더 가벼운 위성을 제안했고, 켈디시는 처음 반대했다가 물러섰다. 1957년 1월 코롤료프는 40~50kg급 소형 위성 두 기를 국제지구관측년 직전에 발사하자는 수정안을 정부에 제출했고, 2월 15일 각료회의가 이를 승인하면서 오브옉트 D의 발사는 1958년 4월로 밀렸다.
전환의 계기는 1955년 7월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국제지구관측년 중 위성 발사를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레오니트 세도프가 코펜하겐에서 2년 내 위성 발사가 가능하다고 맞받은 데서 비롯됐다. 코롤료프는 R-7의 시험 능력과 국제지구관측년 일정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가장 단순한 PS-1을 먼저 쏘아 올려 최초 발사 기록을 확보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네 번의 시도
R-7의 첫 세 차례 시험발사가 실패한 뒤 1957년 8월 21일 네 번째 발사가 성공했고, 그해 10월 4일 PS-1이 궤도에 올랐다. 오브옉트 D의 첫 발사는 1958년 4월 27일로 예정됐으나 발사체가 산화제 계통의 압력 진동으로 120초 만에 파괴되면서 실패했다. 이 현상은 그해 여름에야 규명됐다. 예비 기체인 2호기가 1958년 5월 15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오브옉트 D는 스푸트니크 3호로 궤도에 올랐다.
궤도 운용과 성과
스푸트니크 3호는 동력으로 은-아연 축전지와 태양전지를 썼다. 태양전지는 작은 무선표지기를 돌렸고, 주 축전지가 방전된 1958년 6월 3일 이후에도 송신을 계속했다. 위성은 1960년 4월 6일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까지 692일 동안 궤도를 돌았다.
장비는 일곱 연구집단이 개발했고, 궤도에서는 상층대기 조성과 전하입자, 양성자, 우주선, 자기장과 정전기장, 미소유성체와의 조우를 측정했다. 가장 중요한 과학 성과는 1958년 7월 7일 태양폭발에서 나온 태양 우주선 폭발을 지구 대기권 밖에서 처음으로 관측한 것이었다. 크게 늘어난 궤도는 원지점 1,881km, 근지점 226km로, 유인 비행에 안전한 고도 범위를 1958년에 이미 제시했다.
기록의 불일치
설계 질량은 문헌마다 다르다. 법령상 한도는 1,000~1,400kg이었고, 1956년 예비설계 단계에서는 570kg으로, 러시아 측 자료에서는 발사 시 질량을 1,327kg으로 기록한다. 첫 발사 실패의 시점과 원인, 발사체 명칭(8K71에서 8A91으로의 개량형)에 관해서도 서술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이 항목은 공개된 사료에 나타난 수치를 각각의 출처에 따라 제시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Object D designation, 30 January 1956 decree, scientific payload, shift to PS-1, launch as Sputnik 3 on 15 May 1958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Object D as fifth R-7 payload type, 1,000-1,400 kg mass, delays leading Korolev to prioritize PS-1
- nasa.gov Asif Siddiqi for NASA: Object D as the complex laboratory sidelined for the simpler satellite; A/B/V/G designations for nuclear warhead containers
- russianspaceweb.com Anatoly Zak, RussianSpaceWeb: decree 149-88ss of 30 Jan 1956, design details, scientific objectives, timeline of development
- russianspaceweb.com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
- nasa.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