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Александр Солженицын, 1962) · 1962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첫 발표작으로, 1962년 11월 잡지 『신세계』에 실렸다. 정치범 수용소의 죄수 이반 슈호프가 맞는 1951년 1월 어느 날 하루를 기상부터 취침까지 따라간다. 흐루쇼프의 승인으로 수용소를 처음 공개적으로 다룬 소설이 되었으나, 1970년대에 도서관에서 회수되었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의 무서움이다. 새벽 다섯 시, 나이 마흔의 슈호프, 수인 번호 Щ-854가 몸이 아파 늦게 일어난다. 그는 전쟁 때 포위되었다가 포로가 된 뒤 며칠 만에 도망쳐 왔는데, 조국 반역으로 10년형을 받고 8년째 복역 중이다. 징벌방 사흘을 받을 뻔하다 간수실 바닥을 닦는 것으로 넘어간다. 아침밥은 멀건 국과 죽이다. 의무실에서는 오늘 면제 인원이 찼다고 돌려보낸다.

영하 30도 가까운 날, 작업반이 총 든 호송병을 따라 짓다 만 발전소로 나간다. 일을 시작하자 묘한 일이 생긴다. 슈호프는 몸을 쓰는 일이 즐겁다. 슬래그 블록을 쌓으며 작업반은 둘로 나뉘어 시합을 벌이고, 추위도 끝날 시간도 잊는다. 남은 모르타르가 얼까 봐 끝까지 쓰느라 하마터면 늦을 뻔한다. 점심에는 운 좋게 두 그릇을 더 받아 한 그릇이 제 몫이 되고, 쇠톱 날 조각도 하나 주웠다. 검문 때 장갑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만 운 좋게 들키지 않는다. 저녁에는 소포를 받는 동료 체자르를 위해 줄을 서 준 값으로 그의 저녁과 빵을 얻고, 담배도 산다.

잠들기 전 그는 만족한다. “흐린 구석 없는, 거의 행복한 하루”였다. 그런 날이 3,653일 가운데 하나다.

왜 그렇게 큰 사건이었나?

솔제니친은 1950~1951년 겨울 에키바스투스 수용소에서 들것을 나르다 이 생각을 얻었다. 수용소 생활을 다 쓰려면 평범한 일꾼의 평범한 하루면 된다는 것이다. 1959년에 40일 남짓 만에 썼다. 아무도 모르는 작가의 원고가 『신세계』 편집장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에게 닿았다. 그는 1962년 8월 6일 흐루쇼프 앞 편지와 원고를 보좌관 레베데프에게 건넸다. 9월 레베데프가 쉬는 시간에 읽어 주자 흐루쇼프는 흥분해서 지도부용으로 23부를 내라고 했다.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작한 스탈린 비판의 정치와 맞물린 것이다. 10월 12일 당 간부회가 출판을 결정했다.

1962년 11월 『신세계』 11호가 나왔고, 크렘린 대궁전의 당 중앙위 확대 전원회의 참석자들에게 약 2천 부가 전달되었다. 곧 『로만-가제타』가 70만 부를 찍었다. 공식 호평 자체가 역사였다. 시모노프가 『이즈베스티야』에, 블라디미르 예르밀로프가 『프라우다』에 칭찬을 썼다. 전국에서 독자 편지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적어 보내고 만나자고 했고, 이것이 『수용소 군도』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바를람 샬라모프는 작가에게 “이 소설은 시와 같다”고 편지했다.

어떤 비판이 있었나?

두 방향이었다. 어느 평론가는 왜 주인공이 ‘진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농민이냐고 불평했고, 작가에게는 억울한 콜호스 농민보다 억울한 주위원회 서기로 썼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 비공식으로 전해졌다. 발렌틴 카타예프는 수인의 항의를 보여 주지 않으니 거짓이라고 했다. 1964년에는 이 소설이 한 수용소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비춘다는 익명의 분석이 사미즈다트로 돌았다.

왜 다시 사라졌나?

흐루쇼프가 물러난 뒤 공기가 바뀌었다. 1971~1972년에 모든 판본이 비공개로 도서관에서 회수되었고, 잡지의 해당 쪽은 찢겨 나갔으며 목차의 이름은 먹칠되었다. 1974년 2월 솔제니친을 추방한 뒤 글라블리트 명령 제10호가 맹인용 판까지 포함한 회수 대상을 공식 열거했다. 금지는 1988년 말에 풀렸고, 1990년부터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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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