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 제227호
Order No. 227
1942년 7월 28일 스탈린이 국방인민위원 자격으로 서명한 적군 규율 강화 명령.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Ни шагу назад!)'라는 구호로 알려졌으며, 명령 없는 후퇴를 금지하고 각 전선군에 징벌대대(슈트라프바트)를, 각 군에 징벌중대와 배후차단분견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후퇴하는 병사를 현장에서 사살할 권한을 부여한 이 명령은 1942년 여름 남부 전선의 붕괴 위기 속에서 공포와 처벌로 군기를 바로세우려는 시도였으며, 배후차단분견대는 1944년 10월 공식 해산되었다.
상세
배경
명령은 전략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1942년 여름에 나왔다. 붉은 군대는 하르코프 공세의 패배에 이어 보로네지, 돈, 돈바스 일대의 전투에서도 실패하면서 큰 손실을 안고 볼가와 북카프카스까지 후퇴했다. 독일군은 인구가 조밀하고 산업·농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을 점령했다. 명령서 자체가 점령지에 7천만 명의 소비에트 시민과 막대한 전략 자원이 남았다고 적었고, 인적 예비와 식량에서 독일에 대한 우위를 잃었으며 추가 후퇴는 국가의 멸망을 부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같은 목적의 앞선 문서로는 1941년 8월 16일의 명령 제270호가 있었다.[P6][P3][P2]
집필
초안은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가 작성했으나, 그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문안은 거의 남지 않았다. 스탈린이 초안을 가져가 근본적으로 다시 썼고, 주민들이 후퇴 때문에 붉은 군대를 "저주한다"는 대목도 스탈린의 표현이었다.[P7][P19]
내용
명령은 명령 없는 부대 이동을 금지하고, 전선마다 1~3개의 개별 징벌대대와 군마다 5~10개의 개별 징벌중대를 두도록 했다. 징벌대대는 각 800명, 징벌중대는 각 150~200명 규모였으며, 비겁이나 동요로 규율을 어긴 지휘관·정치위원과 병사들을 가장 위험한 전선 구역에 투입해 "조국에 대한 죄를 피로 속죄"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군 단위로는 3~5개의 배후차단분견대(각 200명 이하)를 불안정한 사단 뒤에 배치해, 공황과 무질서한 후퇴가 일어날 경우 공황을 퍼뜨리는 자와 비겁자를 현장에서 사살하도록 했다. 명령 없는 후퇴를 허용한 모든 계급의 지휘관은 직무에서 해임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하도록 했고, 이 명령은 모든 중대·기병대·포대·부대와 사령부에서 낭독하도록 규정되었다.[P4][P11][P52][P55][P56][P60]
다만 배후차단분견대를 이 명령이 처음 창설했다는 것은 흔한 오해다. 군 단위 배후차단분견대는 이미 1941년 9월부터, 내무인민위원부 소속 부대는 전쟁 개시 시점부터 존재했다. 명령 제227호는 그 수를 늘리고 규모를 규정했을 뿐이며, 군 예하에 자체 배후차단분견대를 둠으로써 야전군 지휘부가 내무인민위원부에 매번 요청하지 않고도 동원할 수 있게 했다.[P4][P8]
전달 방식도 특징적이었다. 스탈린의 요구로 이 명령은 일반 배포용으로 인쇄되지 않았고, 부대의 모든 구성원에게 구두로 전달되었다. 정치장교들에게는 "붉은 군대 안에 동지 스탈린의 명령을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P2][P85]
반응과 집행
명령에 대한 반응은 스탈린 시기에도 극단적으로 갈렸다. 내무인민위원부 특별부서의 보고서는 "명령 제227호에 대한 구성원 반응"을 정리하며 부정적·비관적 발언 사례를 여럿 전한다. 3급 군의관 올샤네츠키는 이 명령을 붉은 군대가 이미 독일군에 맞설 힘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마지막 절규라며 "이 조치에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생병 데멘첸코는 "이 모든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쪽이 모두를 죽이거나 모두가 포로로 항복할 것이지만 우리가 이기지는 못한다"라고 했다. 한편 세르게이 슈테멘코 대장은 명령이 부대의 전투력을 대단히 이롭게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P18]
집행은 고르지 않았다. 지휘관들이 배후차단분견대에 병력을 떼어 주는 것을 인력 낭비로 여겨 소극적이었고, 이 부대에는 전투가 어려운 병사들까지 채워지면서 경비 임무 외에 잡일이 맡겨지기도 했다. 1942년 10월에는 내무인민위원부의 독립 부대와 달리 전선의 정규 배후차단분견대를 유지하자는 구상이 사실상 폐기되었다.[P13][P37][P66][P97]
결과와 해산
집행된 조치는 붉은 군대의 후퇴를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지만 후퇴의 공황적 성격을 극복하는 데는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다. 동시에 이 명령은 전투 의욕이 무너진 군대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것이었으나 여러 면에서 해로운 영향도 낳았고, 일부 지휘관들은 집행을 회피했다. 처벌의 위협 때문에 각급 지휘관들이 후퇴를 미루는 경우가 생겨 손실만 커지기도 했다.[P13][P23]
재판으로 처벌받은 붉은 군대 인원은 전쟁 기간 994,300명이었다. 이 가운데 436,600명이 형 선고 후 수감되었고, 1942년 9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징벌부대(중대와 대대)를 거친 사람은 427,910명이었다. 전장을 이탈한 뒤 발견되지 않았거나 배후차단분견대에 의해 곧바로 부대로 돌려보내진 탈영자 212,400명은 이 통계에 들어 있지 않다. 다른 집계로는 1942~1943년 사이에 42만 2,700명이 징벌대대로 보내졌고, 첫 석 달 동안 배후차단분견대가 징벌병 1,000명을 사살하고 2만 4,000명을 징벌대대로 보냈다. 메리데일은 전쟁 중 공식적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약 15만 8,000명으로 추산하면서, 이 수치가 재판을 거치지 않고 도로변에서 사살된 병사들이나 스탈린그라드에서 몇 주 사이에 사살된 것으로 보이는 최대 1만 3,500명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P14][P37][P65][P93]
1944년 10월 29일, 전선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이유로 국방인민위원 스탈린의 명령 제349호에 따라 배후차단분견대가 해산되었다. 인원은 소총 부대로 편입되었다.[P15][P38][P34]
공개
전문은 전쟁 후에도 1988년이 되어서야 활자로 공개되었다. 그전에는 삭제본으로만 나왔으며, 첫 부분 공개는 1958년이었다. 완전한 텍스트는 1988년 8월 《군사사 저널》 8호에 실렸다.[P2][P17]
원문
제227호. 붉은 군대의 규율과 질서를 강화하고 전투 진지에서의 무단 철수를 금지하기 위한 조치에 대하여.
제227호.
1942년 7월 28일.
모스크바.
적은 전선에 새로운 병력을 계속 투입하고, 자신에게 큰 손실이 따르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기어오르듯 진격하며, 소련 내부로 파고들어 새로운 지역을 점령하고, 우리 도시와 마을을 황폐화하고 파괴하며, 소련 주민을 강간하고 약탈하고 살해한다. 전투는 보로네시 지역, 돈 강, 남쪽의 북카프카스 관문에서 벌어지고 있다. 독일 점령군은 스탈린그라드, 볼가 강으로 돌진하고 있으며, 석유와 곡물이 풍부한 쿠반과 북카프카스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점령하려 한다. 적은 이미 보로실로프그라드, 스타로벨스크, 로소시, 쿠퍈스크, 발루이키, 노보체르카스크, 로스토프나도누, 보로네시 절반을 점령했다. 남부 방면군의 일부 부대는 공황에 휩쓸린 자들을 따라가면서 모스크바의 명령도 없이, 제대로 된 저항도 없이 로스토프와 노보체르카스크를 버리고 자신의 군기를 치욕으로 덮었다.
붉은 군대를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던 우리 나라 주민은 붉은 군대에 실망하기 시작하고, 붉은 군대에 대한 믿음을 잃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는 붉은 군대가 우리 인민을 독일 압제자들의 멍에 아래 넘겨주고 자신은 동쪽으로 도망가고 있다고 붉은 군대를 저주한다.
전선의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영토가 많고, 땅이 많고, 인구가 많으며, 곡물은 언제나 풍족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도 동쪽으로 계속 후퇴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들은 이를 통해 전선들에서의 자신들의 치욕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고 기만적이며, 오직 우리의 적에게만 유리하다.
모든 지휘관, 붉은 군대 병사, 정치일꾼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소비에트 국가의 영토는 사막이 아니라 사람들, 즉 노동자, 농민, 인텔리겐치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제, 자녀들이다. 적이 점령했고 점령하려 하는 소련의 영토는 군대와 후방을 위한 곡물과 기타 식량, 산업을 위한 금속과 연료, 군대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는 공장과 플랜트, 철도이다.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발트 지역, 돈바스와 기타 지역을 상실한 후 우리의 영토는 훨씬 줄어들었고, 따라서 사람, 곡물, 금속, 공장, 플랜트도 훨씬 줄어들었다. 우리는 인구 7천만 명 이상, 연간 곡물 8억 푸드 이상, 연간 금속 1천만 톤 이상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인적 예비 병력에서도, 곡물 비축량에서도 독일군에 대해 더 이상 우위를 갖고 있지 않다. 더 후퇴하는 것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동시에 우리 조국을 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버린 영토의 새로운 한 조각 한 조각은 적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방어, 우리의 조국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없이 후퇴할 수 있다거나, 우리에게 영토가 많고, 우리나라가 크고 부유하며, 인구가 많고, 곡물은 언제나 풍족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뿌리째 근절해야 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거짓이고 해로우며, 우리를 약화시키고 적을 강화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후퇴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곡물도, 연료도, 금속도, 원자재도, 공장도, 플랜트도, 철도도 없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제 후퇴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이것이 이제 우리의 주요 구호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완강하게 모든 진지와 소비에트 영토의 모든 1미터를 방어하고, 소비에트 땅의 한 조각 한 조각에 매달려 마지막 가능성까지 지켜내야 한다.
우리 조국은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을 저지하고, 이어서 밀어내고 섬멸해야 한다. 독일군은 공황분자들에게 보이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 그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다. 지금, 향후 몇 달 안에 그들의 타격을 견뎌 내는 것은 곧 우리의 승리를 보장한다.
우리가 그 타격을 견뎌 내고 이어서 적을 서쪽으로 밀어낼 수 있는가? 그렇다, 할 수 있다. 우리 후방의 공장들이 지금 훌륭하게 가동되고 있고, 전선에는 항공기, 전차, 포, 박격포가 점점 더 많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중대, 대대, 연대, 사단, 전차부대, 항공대대에 질서와 규율이 부족하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주된 결함이다. 우리가 사태를 수습하고 조국을 지켜 내려면 우리 군대에 가장 엄격한 질서와 철의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
자기 부대와 편제가 임의로 전투 진지를 이탈하는 지휘관, 정치위원, 정치일꾼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몇몇 공황분자가 전장 판세를 좌우하고, 다른 병사들을 퇴각으로 몰아넣고, 적에게 전선을 열어 주도록 지휘관, 정치위원, 정치일꾼이 허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공황분자와 비겁자는 그 자리에서 척결해야 한다.
이제부터 모든 지휘관, 붉은 군대 병사, 정치일꾼에게는 ‘상급 지휘부의 명령 없이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 것’이라는 요구가 규율의 철칙이 되어야 한다.
상급의 명령 없이 전투 진지에서 물러나는 중대, 대대, 연대, 사단 지휘관과 해당 정치위원, 정치일꾼은 조국의 배신자이다. 그러한 지휘관과 정치일꾼은 조국의 배신자로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 조국의 부름이다.
이 부름을 수행하는 것은 우리 땅을 지키고, 조국을 구하며, 증오스러운 적을 섬멸하고 승리하는 길이다.
독일군은 붉은 군대의 압박을 받아 겨울에 후퇴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군 내부에서는 규율이 흔들렸다. 그 뒤 독일군은 규율을 회복하기 위해 몇 가지 가혹한 조처를 취했고, 이 조처들은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비겁함이나 동요 때문에 규율을 어긴 병사들로 100개가 넘는 형벌중대를 편성하고, 이들을 전선의 위험한 구역에 배치한 다음, 피로 자기 죄를 속죄하라고 명령했다. 이어서 그들은 비겁함이나 동요 때문에 규율을 어긴 지휘관들로 약 10개의 형벌대대를 편성하고, 그들에게서 훈장을 박탈한 다음, 전선의 더 위험한 구역에 배치하고 피로 자기 죄를 속죄하라고 명령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특별 차단부대를 편성하여 동요하는 사단들 뒤에 배치하고, 이들 부대에 진지를 임의로 이탈하려 하거나 투항하려 할 경우 공황분자를 그 자리에서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조처들은 효과를 거두었고, 이제 독일군은 겨울에 싸웠을 때보다 더 잘 싸우고 있다. 그래서 결국 다음과 같은 상황이 된다. 독일군은 자기 조국을 지킨다는 숭고한 목표가 없고 남의 나라를 정복하려는 약탈적 목표 하나만 있을 뿐인데도 훌륭한 규율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 군대는 짓밟힌 우리 조국을 지킨다는 숭고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규율을 갖추지 못하고, 그 때문에 패배를 겪고 있다.
이 문제에서 우리도, 과거에 우리 선조들이 적에게 배우고 나서 그들을 이겼던 것처럼, 우리의 적에게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붉은 군대 최고사령부는 명령한다:
1. 방면군 군사평의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면군 사령관들에게:
a) 군대 내의 퇴각 분위기를 무조건 일소하고, 우리가 더 동쪽으로 계속 후퇴할 수 있고 또 후퇴해야 하며, 그러한 후퇴가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선전을 철권으로 분쇄한다.
b) 방면군 사령부의 명령 없이 부대가 점령하고 있던 진지에서 무단 철수하는 것을 허용한 집단군 사령관들을 무조건 해임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최고사령부로 보낸다.
c) 방면군 내에 정세에 따라 1개 내지 3개의 형벌대대(각 800명)를 편성하고, 모든 병과의 중급 및 상급 지휘관과 그에 상응하는 정치일꾼들 가운데 비겁 또는 동요로 규율을 위반한 자들을 그 대대로 보내며, 그들이 조국에 대한 범죄를 피로 속죄할 기회를 얻도록 그들을 방면군의 더 어려운 구역에 배치한다.
2. 집단군 군사평의회와 무엇보다도 집단군 사령관들에게:
a) 집단군 사령부의 명령 없이 부대가 점령하고 있던 진지에서 무단 철수하는 것을 허용한 군단·사단 지휘관과 정치위원들을 무조건 해임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방면군 군사평의회로 보낸다.
b) 집단군 내에 3~5개의 잘 무장한 저지부대(각 200명 이하)를 편성하고, 동요하는 사단들의 바로 후방에 배치한다. 이 부대는 사단 부대들이 공황에 빠지거나 무질서하게 철수할 경우 공황을 일으킨 자와 겁쟁이를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그로써 사단의 정직한 전사들이 조국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도록 돕는다.
c) 집단군 내에 정세에 따라 5개에서 10개까지의 형벌중대(각 150~200명)를 편성하고, 비겁 또는 동요로 규율을 위반한 일반 병사와 하급 지휘관들을 그 중대로 보내며, 그들이 조국에 대한 범죄를 피로 속죄할 기회를 얻도록 그들을 집단군의 어려운 구역에 배치한다.
3. 군단·사단 지휘관과 정치위원들에게:
a) 군단장이나 사단장의 명령 없이 부대가 무단 철수하는 것을 허용한 연대·대대 지휘관과 정치위원들을 무조건 해임하고, 그들의 훈장과 메달을 회수하며, 군사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방면군 군사평의회로 보낸다.
b) 부대 내 질서와 규율을 강화하는 일에서 집단군 저지부대에 온갖 도움과 지원을 제공한다.
본 명령은 모든 중대, 기병중대, 포대, 비행대대, 분견대, 참모부에서 낭독한다.
소련 국방인민위원
이. 스탈린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text, history of penal battalions and blocking detachments, statistics on personnel sentenced, disbandment of blocking detachments in October 1944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text drafted by Vasilevsky and rewritten by Stalin, full text unpublished until 1988, detail that blocking detachments pre-existed the order and were expanded by it, casualty and penal unit statistics, contemporaneous reactions from soldiers and officers
- thehistoryreader.com Catherine Merridale analysis: the order was conveyed by word of mouth, not published; soldiers' mixed reactions from relief to dread; estimated 158,000 formal execution sentences and 13,500 shot at Stalingrad; at least 422,700 served in penal battalions
- cyberleninka.ru G.M. Ippolitov (2017), Samara Scientific Center RAS: scholarly analysis of the order as a cruel but necessary measure, overview of historiographical debates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영문)
- thehistoryrea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