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백치증
Parliamentary cretinism
의회 안의 표결과 절차가 정치의 전부라고 믿어 의회 밖의 계급 세력 관계를 보지 못하는 태도를 꼬집는 마르크스주의의 말.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 5장에서 1851년 루이 보나파르트와 맞선 질서당 의원들을 두고 처음 썼고, 뒤에 엥겔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의회 수단에만 매달리는 사회주의 정치를 비판하는 데 썼다.
상세
마르크스가 이 말을 쓴 것은 1851년 1월의 장면에서였다. 보나파르트가 파리 군 총사령관 샹가르니에를 해임하자, 질서당이 지배하던 입법국민의회는 내각 불신임을 의결하고 이를 승리로 여겼다. 그러나 질서당은 이미 보통선거를 없애는 등 의회 권력의 조건을 제 손으로 허물어 온 터였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1848년 이래 대륙 전체에 퍼진 그 독특한 병, 의회 백치증이 있어야 했다. 이 병은 감염된 자들을 상상의 세계에 붙박아 두고, 거친 바깥 세계에 대한 모든 감각과 기억과 이해를 빼앗는다.」
마르크스는 이 병에 가장 깊이 걸린 사람으로 티에르를 꼽았다. 「티에르는 의회의 영웅답게 의회 백치증이라는 불치병에 누구보다 깊이 걸려 있었다.」 의회가 사실상 죽은 뒤에도 그는 대통령을 헌법의 테두리에 묶어 두는 책임법이라는 새 의회 술책을 꾸몄다. 결국 의회는 대통령의 장관들을 치면서 대통령을 맞혔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보나파르트에게 의회를 다시 욕보일 기회를 주었을 뿐이었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이렇다. 의회는 계급의 이해를 간접적으로만 대표하고, 그 정치는 사회적 조건에서 떨어져 나와 추상화된다. 그래서 의회 백치증은 실제 세계에 대한 감각도 기억도 이해도 없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병은 의회 체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의회 자체를 허물고 행정 권력을 키워 주었다.
엥겔스도 이 말을 즐겨 썼다. 그는 의회 백치증을, 온 세계의 역사와 미래가 자기들이 의원으로 앉아 있는 바로 그 대의 기관의 다수결로 정해진다고 믿게 만드는 불치병이라고 설명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 운동이 의회 수단에만 기대면 시간을 허비하고 반동 세력이 힘을 키우게 할 뿐이라고 보았고, 이 말은 그 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의회 수단에만 매달리는 노선을 비판하는 말로 널리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