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yar Élet Pártja (MÉP); 1932–1939년 Nemzeti Egység Pártja · 1932–1945

헝가리 생활당

Party of Hungarian Life

호르티 시대 헝가리 집권당이 1932년 굄뵈시 줄러 아래 국민통일당으로, 1939년 텔레키 팔 아래 헝가리 생활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의 당.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을 걸으며 유대인법과 독일과의 동맹을 추진했고, 1939년 선거에서 의석 3분의 2 이상을 얻었다. 1944년 독일 점령 뒤 독자적 역할을 잃었고, 1945년 2월 26일 「파시스트 조직」으로 해산되었다.

상세

1932년 10월 총리가 된 굄뵈시 줄러는 통일당의 이름을 국민통일당으로 바꾸었고, 유급 당 조직원과 선전을 동원해 당을 대중정당으로 만들려 했다. 그의 95개조 「국민노동계획」은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와 더 권위주의적인 국가 질서를 담았으나, 호르티와 베틀렌 이슈트반 주변 보수 세력의 견제로 일부만 실현되었다. 베틀렌과 그 지지자들은 1935년 탈당했다. 1935년 선거 결과를 헝가리어 출처는 171석, 독일어 출처는 149석으로 적는다.

1936년 10월 굄뵈시가 재임 중 죽은 뒤 더라니 칼만은 처음에 급진 우파를 억눌렀으나, 1938년 3월 죄르 강령으로 재군비 계획을 발표하고 유대인 제한 입법을 예고했다. 후임 임레디 벨러 아래서 제1차 유대인법이 제정되었고, 1938년 11월 제1차 빈 중재로 영토 일부를 되찾았다. 1938년 말 의사규칙 개정을 둘러싸고 집권당 의원 다수가 탈당해 당이 처음으로 의회 소수파가 되었다.

1939년 2월 임레디가 물러나고 텔레키 팔이 총리가 된 뒤, 임레디가 시작한 「헝가리 생활 운동」이 당에 합쳐지고 당명이 헝가리 생활당으로 바뀌었다. 개칭 날짜를 헝가리어·러시아어 출처는 2월 2일, 독일어 출처는 2월 22일로 적는다. 1939년 5월 선거에서 당은 260석 가운데 헝가리어 출처로는 187석, 독일어 출처로는 181석을 얻었고, 영어 출처는 의석 72%, 득표 49%로 적는다. 같은 해 제2차 유대인법이 제정되었다. 1940년 10월 가장 친나치적인 의원들이 임레디를 따라 탈당해 헝가리 쇄신당을 만들었다.

1941년 4월 텔레키가 자살한 뒤 바르도시 라슬로 아래서 헝가리는 유고슬라비아 공격과 대소련 전쟁에 가담했다. 1942년 3월 총리가 된 칼러이 미클로시는 서방 연합국과의 비밀 교섭을 꾀했고, 이 때문에 당 안에서도 긴장이 커졌다.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를 점령하자 칼러이는 물러났다. 당은 해산되지 않고 허용된 네 정당 가운데 하나로 남았으나 온건파는 축출되어 게슈타포에 체포되기도 했고, 의원 23명이 의석을 잃었다. 1944년 10월 살러시 페렌츠의 화살십자당이 권력을 잡은 뒤 당은 독자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1945년 2월 26일 파시스트 조직으로 해산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hu.wikipedia.org
  3. de.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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