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üggetlenségi és Negyvennyolcas Párt (Függetlenségi és 48-as Párt) · 1884–1918

독립당 (헝가리)

Party of Independence and '48

1884년 독립당과 48년 독립당이 합쳐 생긴 헝가리의 민족주의 야당. 1867년 대타협에 반대하며 1848년 혁명의 독립 노선을 내세웠고, 1896년부터 집권 자유당의 주된 야당이었다. 1905·1906년 선거에서 연합 야당의 일원으로 승리했으며 1918년까지 활동했다.

상세

헝가리어 출처에 따르면 1884년 9월 29일 모차리 러요시가 이끈 독립당과 이라니 다니엘이 이끈 48년 독립당이 합쳐 「독립과 48년당」이 되었다. 두 전신은 1874년부터 활동했다. 새 당은 48년당의 민족주의적·시민 급진적 관점을 이어받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관계에서는 완전한 독립 대신 동군연합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쪽으로 누그러졌고, 이것이 날카로운 내부 대립과 잦은 분열로 이어졌다. 영어 출처는 코슈트 러요시가 1894년 죽을 때까지 당의 정신적 지도자였다고 적는다.

첫 당수는 이라니 다니엘이었고, 1893년 유스트 줄러, 1895년 코슈트 페렌츠가 뒤를 이었다. 1884년부터 우그론 가보르가 이끈 분파가 당의 급진 요소를 억누르려 했고, 1890년과 1894년 같은 이름의 별도 당으로 떨어져 나갔다가 1905년 1월 다시 합류했다. 1893년에는 교회 정책을 둘러싸고 에트뵈시 카로이 등 23명이 탈당해 독립인민당을 세웠다.

1905~1906년 위기 때 재통합된 당은 연합 야당에 참여했고, 연합 야당의 승리로 자유당의 1875년 이래 패권이 무너졌다. 그러나 1867년 대타협 지지파와 반대파의 대립이 다시 불거져 1907~1909년 「좌파당」, 「유스트당」, 「코슈트당」으로 갈라졌고, 1910년 선거에서 패해 다시 야당이 되었다.

1913년 6월 14일 여러 분파가 「통합 48년·독립당」으로 다시 뭉쳤다. 헝가리어 출처는 1914년 코슈트 페렌츠가 죽은 뒤 어포니 얼베르트가 마지막 당수가 되었다고 적는 한편, 1916년 「당시 당수」 카로이 미하이가 탈당해 카로이당을 세웠다고도 적는다. 당은 1918년 초 48년 헌법당에 합류했고 평의회 공화국 시기 금지되어 그 형태로는 재건되지 않았다. 1922년 바차니 티버더르 등이 이 당의 계승을 자처하는 독립·48년·코슈트당을 세웠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hu.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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