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달러
Petrodollar
석유 수출국이 석유를 팔아 번 미국 달러 가운데 자국 경제가 다 흡수하지 못하고 남는 흑자. 1973년 석유 위기 때 생긴 말이다. 이 돈이 미국 국채, 서방 은행 예금, 무기와 소비재 수입, 개발도상국 대출로 다시 세계 경제에 흘러드는 과정을 「페트로달러 환류」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값을 달러로만 매기고 흑자를 미국 국채에 넣기로 한 1974년 미국-사우디 협정과 함께, 금태환이 끝난 뒤에도 달러 수요를 떠받친 장치로 이야기된다.
상세
「페트로달러」는 석유(petroleum)와 달러를 합친 말이다. 1973년 이집트계 미국인 경제학자 이브라힘 오웨이스나 미국 전 상무장관 피터 피터슨이 처음 썼다고 한다. 좁게는 석유 수출국이 번 달러 중 자기 나라 개발에 쓰고도 남는 흑자를 가리킨다. 인구가 적거나 공업화가 막 시작된 산유국은 갑자기 불어난 수입을 국내에서 다 투자할 수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흑자가 미국 같은 곳에 투자되거나 수입에 쓰여 세계 경제로 돌아와야 한다고 보았다. 돈이 산유국의 준비금으로 묶여 버리면 세계 경제 성장이 꺾인다는 이유였다.
첫 번째 큰 흑자는 1973년 석유 값이 네 배로 오른 뒤에 생겼다. 1974년부터 1981년까지 OPEC 회원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모두 4,500억 달러에 이르렀고, 그 90%가 페르시아만 아랍 국가와 리비아에 쌓였다. 이란도 1978년까지는 큰 흑자를 모았다. 아랍 산유국의 돈은 오늘날 국부펀드라 불리는 정부 기관을 통해 미국 국채와 선진국 금융시장에 들어갔고, 수십억 달러가 미국·유럽·스위스·영국의 대형 상업은행에 예금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규제 밖에 있는 달러 시장인 유로달러 시장이 크게 자랐다.
정치적 축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래였다. 금수가 풀리고 석 달 뒤인 1974년 두 나라는 경제·군사 협력을 넓히는 포괄 협정을 맺었고, 1975 회계연도에만 전투기 60대를 포함한 20억 달러어치 군사 계약이 이어졌다. 협정의 핵심은 사우디가 석유 값을 달러로 매기고 수십억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닉슨과 키신저는 금본위의 포기가 달러 수요를 떨어뜨릴까 걱정했고, 미국은 사우디 유전을 군사적으로 지켜 주는 대신 사우디가 석유 대금으로 달러만 받기로 했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다.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더 오래된 안보 관계는 석유-안보 거래 항목에서 다룬다.
환류는 1973년 석유 파동의 단기 불황 효과를 줄였지만, 비싼 석유를 사야 하는 석유 수입국에는 빚을 남겼다. IMF는 석유를 수입하는 개발도상국 100곳의 외채가 1973년부터 1977년 사이 150% 늘었다고 추산했다. 불황으로 기업 투자가 덜 매력적이 되자 은행들은 예금받은 페트로달러를 브라질·아르헨티나 같은 라틴아메리카와 터키 정부에 직접 빌려주었다. 언론인 윌리엄 그라이더는 은행이 부유한 OPEC 정부의 예금을 받아 개발도상국이 파산을 피하도록 빌려주었다고 요약했다. 1979년 이후 미국 금리가 치솟자 이 빚은 갚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고, 1980년대 제3세계 외채위기로 이어졌다. IMF도 1974~1976년 산유국의 돈으로 석유 수입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는 「석유 기금」을 운영했다.
페트로달러를 두고는 해석이 갈린다. IMF와 주류 경제학은 환류를 세계 경제의 균형을 되찾는 필요한 과정으로 본다. 비판자들은 환류에 기댄 국제 통화 체제가 개발도상국을 착취하고 미국 제국주의를 떠받친다고 본다. 「페트로달러 전쟁」론은 석유 결제 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를 군사 개입으로 지키는 경제 제국주의로 설명하지만, 반론은 석유 결제가 늘리는 달러 수요가 아주 작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은 1974년 페트로달러가 미국·유럽 은행에 단기 예금되어 오히려 신용과 지폐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고 보았고, 산유국 지배 계급의 손에 자본이 빠르게 쌓이면서 독자적인 「아랍·이란 금융자본」이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높은 석유 값은 사회주의권에도 페트로달러를 가져다주었다. 1974~1981년 흑자기 동안 소련은 석유 수출로 번 돈으로 동구권의 어려운 경제를 떠받쳤고, 1980년대 석유 공급 과잉으로 이 수입이 줄어든 것은 1989년 동구권 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다. 두 번째 큰 흑자기인 2005~2014년에는 OPEC의 수입이 2008년과 2011~2014년에 해마다 약 1조 달러에 이르렀고, 산유국들은 은행과 IMF를 거치기보다 국부펀드로 세계 시장에 직접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