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standard / 금본위제(金本位制) · 1873–1971 (국제 금본위제는 1873~1914년, 1920년대 후반~1932년에 작동했고, 1944~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제한된 형태로 이어졌다. 영국은 1717년부터 사실상 금본위였다.)

금본위제

Gold standard

화폐 단위를 일정한 양의 금으로 정해 두고,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그 값에 맞추어 지폐를 금으로 바꾸어 주는 통화 제도. 1870년대부터 1914년까지 국제 통화 체제의 기초였다. 1차 세계대전 뒤 영국 등이 금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외화를 준비금으로 삼는 「금환본위제」로 되살렸으나, 대공황 때 각국이 차례로 떠났다. 2차 세계대전 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달러를 매개로 제한된 형태로 이어지다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 태환을 끊으면서 끝났다.

상세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나라마다 화폐가 금의 일정량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금이 곧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결제 수단이 되고 환율도 사실상 고정된다. 영국은 1717년 조폐국장 아이작 뉴턴이 은에 비해 금값을 높게 매기면서 사실상 금본위가 되었다. 국제 체제로서의 금본위제는 1873년 독일 제국이 은화 대신 금 마르크를 도입한 뒤 유럽 여러 나라가 뒤따르면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세계 금융의 중심이던 영국의 제도를 다른 나라들이 따라간 것이었다.

원리상 금본위제는 저절로 균형을 잡는 장치로 설명되었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이 빠져나가 통화량이 줄고 물가가 내려 수출이 다시 늘고, 금이 들어오는 나라는 반대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중앙은행이 금 유출을 막으려고 할인율을 올려 외국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는 국내 신용을 조이고 경기를 위축시켰다. 케인스는 1920년대에 이 관행을 중앙은행이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이라 불렀다.

1차 세계대전 때 대부분의 나라가 금 태환을 멈추고 전비를 화폐 발행으로 메워 물가가 크게 올랐다. 1925년 영국은 처칠 재무장관 아래 전쟁 전과 같은 1파운드 = 4.86달러로 금본위에 돌아갔고, 케인스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들어 반대했다. 전간기의 금본위제는 금 대신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파운드나 달러를 준비금으로 쌓는 「금환본위제」여서, 외국 중앙은행에 대한 부채가 늘수록 잉글랜드 은행의 준비율이 나빠지는 불안정을 안고 있었다.

대공황 때 금본위제는 위기를 나라에서 나라로 옮기는 통로가 되었다. 금을 지키려면 금리를 올리고 지출을 줄여야 했으므로, 각국은 실업이 치솟는 중에도 긴축을 강요받았다. 1931년 여름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금 태환을 멈추고 외환을 통제했고, 9월 영국이 금본위를 떠났다. 1932년 말이면 금본위제는 세계 통화 체제로서 사실상 무너졌고, 미국은 1933년, 프랑스가 이끈 「금 블록」 나라들은 1935~1936년에 떠났다. 27개국을 표본으로 한 2024년 연구는 금본위를 떠난 것이 회복을 도왔다고 보았다.

배리 아이켄그린, 피터 테민, 벤 버냉키 등은 금본위제가 디플레이션 충격을 나라 사이에 옮기고, 각국 통화 당국이 은행 공황에 맞서지 못하게 막아 회복을 가로막았다고 본다. 아이켄그린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유로 실업을 줄이라는 노동조합·노동당·보통선거의 압력, 위기 때마다 커진 자본 도피, 그리고 영국을 대신할 금융 중심인 미국이 체제를 관리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 다만 거대한 금 준비를 가진 미국은 금본위 때문에 확장 정책을 못 쓴 것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은 국내 태환 없이 금본위를 유지했다. 각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고, 각국 중앙은행만 달러를 1온스 35달러에 금으로 바꿀 수 있게 했으며, 국제통화기금의 신용으로 금을 잃는 나라가 디플레이션을 겪지 않게 조정을 완화했다. 이 체제는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 태환을 일방적으로 끊으면서 끝났다. 2012년 미국 경제학자 3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2%가 금본위제로 돌아가도 물가 안정과 고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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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