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erių žudynės · 1941–1944

포나리 학살

Ponary massacre

1941년 7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빌뉴스 근교 포나리(파네리아이)에서 독일 친위대와 정보부(SD), 리투아니아인 「특수소대」가 사람들을 총살한 대량 학살. 희생자는 7만~1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가운데 약 7만 명이 유대인이었고 나머지는 폴란드인과 소련군 포로 등이었다.

상세

총살은 1941년 7월 2일 특무부대 9가 빌뉴스에 오면서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사격은 80명가량의 리투아니아인 자원자 부대가 맡았다. 소련이 군용 비행장의 기름 저장고로 파 두었던 커다란 구덩이 여섯 개가 무덤이 되었다. 9월 빌뉴스 게토가 세워진 뒤에도 「작전」이 이어져, 1941년 말까지 포나리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2만 1,700명(스나이더)부터 3만 3,500명(아라드), 약 4만 명(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까지로 추정된다.

1943년 소련군이 다가오자 나치는 「1005 작전」에 따라 수감자들로 「시신 부대」를 꾸려 시신을 파내 태우게 했다. 이들은 1944년 4월 19일 숟가락으로 판 굴로 탈출했고, 80명 가운데 살아남은 11명의 증언이 학살을 알렸다. 소련은 오랫동안 희생자를 「소련 시민」으로만 기렸고, 1991년에야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념비가 세워졌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encyclopedia.ushm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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