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ad Popular · 1969.10.09–1973.09.11 (쿠데타 뒤 망명지에서 이름만 남았고, 1981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인민연합 (칠레)

Popular Unity (Chile)

1969년 10월 칠레 사회당과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 급진당, 대중행동통일운동(MAPU), 독립인민행동(API), 사회민주당과 함께 만든 좌파 선거 연합.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고,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로 쓰러질 때까지 집권 연합으로서 구리 국유화, 농지개혁 가속, 사회적 소유 영역 창설 같은 「칠레식 사회주의」 강령을 추진했다. 1971년 기독교좌파(IC)가 합류했다.

상세

인민연합은 1956년부터 사회당과 공산당이 묶여 있던 인민행동전선(FRAP)을 넓힌 것이다. 두 당이 1969년 10월 9일 공동 문서를 내어 가까운 세력에게 새 연합을 제안했고, 12월에 연합이 꾸려졌다. 후보 선출은 쉽지 않았다. 사회당 지도부는 세 번 낙선한 아옌데를 전적으로 밀지 않았고, 공산당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급진당은 알베르토 발트라를 내세웠다. 1970년 1월 22일에야 아옌데가 후보로 확정되었다.

강령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기존 헌정 질서 안에서 선거와 법률로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경제를 대기업과 독점을 국유로 하는 사회적 소유 영역, 국가와 민간이 함께하는 혼합 영역, 중소기업의 민간 영역으로 나누고, 외국 자본이 가진 기간 자원을 국유화하며, 단원제 「인민의회」로 국가를 바꾸겠다고 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행의 국가 형태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련형 혁명과 스스로 구별했다.

연합 안에는 처음부터 두 노선이 있었다. 아옌데와 공산당, 급진당, MAPU 일부는 기독민주당과 타협하며 성과를 굳혀 가자는 쪽이었고, 카를로스 알타미라노가 이끈 사회당 좌파와 MAPU·기독교좌파의 급진파는 「전진하되 타협하지 않는다」며 개혁의 가속을 요구했다. 연합 밖의 좌파혁명운동(MIR)은 이 급진파와 가까웠다. 이 갈등은 1972년 이후 경제 위기와 우파의 공세 속에서 정부의 결정을 자주 마비시켰다.

인민연합은 1971년 4월 지방선거에서 약 50%를, 1973년 3월 총선에서 약 43%를 얻었으나 의회 과반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쿠데타 뒤 군사평의회는 인민연합 소속 정당을 모두 불법화했다. 연합은 망명지에서 이름만 이어 가다 1979년 이후 정당들이 따로 움직이면서 1981년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es.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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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