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공산당
Portuguese Communist Party
1921년 3월 6일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포르투갈의 공산당. 1923년 코민테른 포르투갈 지부가 되었고, 살라자르·카에타누 독재 아래 지하에서 가장 조직적인 반대 세력으로 활동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뒤 합법 정당이 되었으며, 끊이지 않고 존속한 포르투갈의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상세
포르투갈 공산당은 1919년 9월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이 세운 포르투갈 최대강령주의 연맹이 1920년 말 금지된 뒤, 그 구성원들을 이어 1921년 3월 6일 창당했다. 다른 유럽 공산당 대부분과 달리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분열이 아니라 아나코생디칼리슴과 혁명적 생디칼리슴 집단에서 나왔다. 1922년 코민테른과 연락을 맺었고, 코민테른 대표 쥘 욍베르드로가 참석한 1923년 11월 제1차 대회에서 코민테른 포르투갈 지부가 되었으며 조제 카를루스 하트스가 첫 서기장이 되었다.
1926년 5월 군사 쿠데타 뒤 당은 탄압을 받았다. 영어 출처는 쿠데타 뒤 금지되었다고, 포르투갈어 출처는 1920년대 말 불법화되었다고 적는다. 1928년 여름 당원은 리스본 50명, 포르투 20명으로 줄었고, 1929년 4월 재조직 회의에서 벤투 곤살베스가 서기장이 되었다. 1935년 11월 서기국 전원이 체포되었고, 곤살베스는 타라팔 수용소에서 죽었다. 당은 1942년부터 1961년까지 서기장 없이 지냈다. 1940년 사면으로 풀려난 당원들이 당을 재건했고, 같은 해 『아반트!』를 다시 냈다. 포르투갈어 출처에 따르면 1960년 1월 알바루 쿠냘 등 10명이 페니시 감옥에서 탈출했고, 쿠냘은 1961년 서기장이 되었다.
1974년 4월 카네이션 혁명 뒤 정치범이 풀려났고, 쿠냘은 4월 30일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당은 식민지 독립을 지지했다. 1974년 10월 제7차 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 36명의 수감 기간은 합쳐 영어 출처로는 300년 이상, 포르투갈어 출처로는 308년이었다. 당이 처음으로 합법 인정을 받은 날은 영어 출처로는 1974년 12월 26일, 포르투갈어 출처로는 1975년 1월 12일이다. 1975년 3월 11일 우파 쿠데타가 실패한 뒤 바스쿠 곤살베스 총리 아래 은행·운수·철강 등 주요 산업이 국유화되었고, 당은 테주강 남쪽의 토지 개혁을 이끌어 남부를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1975년 제헌의회 선거에서 12.52%, 1976년 총선에서 14.56%를 얻었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무너질 때 당은 큰 위기를 맞았으나, 1990년 5월 제13차 대회에서 레닌주의 노선을 유지하기로 했다. 1992년 카를루스 카르발랴스가 쿠냘의 뒤를 이었고, 2004년 제로니무 드 소자, 2022년 파울루 하이문두가 서기장이 되었다. 1987년부터는 생태당 「녹색당」과 단일민주연합(CDU)을 이루어 선거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