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erproklamation in Versailles / Deutsche Reichsgründung · 1871년 1월 18일

독일 제국 선포 (1871)

Proclamation of the German Empire (1871)

1871년 1월 18일 포위된 파리 외곽의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로 선포된 의식. 11월 조약으로 남독일 국가들이 북독일연방에 들어오고 1월 1일 새 헌법이 발효한 뒤의 상징적 행사로, 1701년 프로이센 왕국 창건 기념일에 맞춰 열렸고 독일 제국 건국일로 기념되었다.

상세

1866년 오스트리아를 밀어내고 북독일연방을 세운 비스마르크에게 1870년의 전쟁은 남독일 국가들의 특수주의를 넘어설 기회였다. 8~9월의 승리로 남독일 군주들은 연방 가입에 기울었고, 1870년 11월 바덴·헤센다름슈타트·뷔르템베르크·바이에른이 조약을 맺었다. 12월 8일 연방 참의원은 연방의 이름을 「독일 제국」으로 바꾸고 프로이센 왕을 독일 황제로 삼기로 의결했고, 빌헬름은 그날 제국의회 대표단 앞에서 동의했으며, 12월 9~10일 제국의회가 황제 칭호를 바치기로 하고 남독일 국가들을 받아들이는 헌법 개정을 통과시켰다. 새 헌법과 황제 칭호는 1871년 1월 1일 발효했다. 빌헬름은 황제 칭호가 프로이센 왕의 칭호를 가릴까 꺼렸고 「독일의 황제(Kaiser von Deutschland)」를 원했으나, 비스마르크는 남독일 제후들과 오스트리아 황제가 반발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왕은 마지못해 「독일 황제(Deutscher Kaiser)」를 받아들였다. 날짜는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1세로 대관한 1월 18일로 잡았고, 장소는 루이 14세가 독일 도시와 나라들을 정복한 것을 천장화로 기린 거울의 방이었다. 독일군 대본영이 베르사유에 있었고 프로이센 지도부와 동맹국 지도자 일부가 파리 주변에 모여 있었다.

1월 18일 군악대 뒤로 독일군이 궁전 둘레를 행진했고, 각 야전 연대 대표단이 전투로 찢긴 군기를 「알록달록한 숲」처럼 거울의 방에 세웠다. 한가운데 제단을 두고 예배를 올린 뒤 모두가 「이제 모두 하느님께 감사하라」를 불렀고, 회랑 끝 단 위에 빌헬름 1세와 제후들이 섰다. 비스마르크가 선포문을 읽었고, 빌헬름의 유일한 사위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가 헌법상 정확한 칭호를 피해 「빌헬름 황제 폐하」를 외치자 참석자들이 세 번 따라 외쳤다. 헤센 대공, 브라운슈바이크 공, 로이스 양가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스하우젠·발데크피르몬트·리페의 제후는 참석하지 않았다. 빌헬름의 편지, 비스마르크의 서술, 병사로 참석한 역사가 알베르트 폰 피스터의 기록은 옥좌 대신 야전 제단을 세운 점에서 일치한다. 빌헬름은 종교적 성격을 강조했고, 비스마르크는 황제가 제후들 위에 서는 권위자가 아니라 전우들과 함께 승리한 사령관으로 자신을 보았다며 공공연히 비판했다. 3월 3일 새 제국의회 선거를 거쳐 5월 4일 제국 헌법이 발효했고, 프랑스는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 조약으로 제국을 승인했다. 제국은 왕국·대공국·공국·후국·자유시 25개의 연방이었고, 황제는 「동등한 자 가운데 첫째」로서 연방 참의원을 주재하고 재상을 임명했다. 통일은 자유 대신 이루어졌다는 비판 속에 마르크스는 제국을 「의회의 형식으로 가린 군사 전제」라 불렀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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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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