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апалльский договор · 1922

라팔로 조약

Treaty of Rapallo

1922년 4월 16일 제노바 회의 도중 소비에트 러시아와 독일이 이탈리아 라팔로에서 맺은 조약. 상호 청구권 포기와 외교 관계의 전면 정상화, 최혜국 대우를 담았다. 베르사유 질서에서 배제된 두 나라의 제휴로 서방 열강에 충격을 주었고, 소비에트 국가가 고립에서 벗어나는 첫 돌파구가 되었다. 이후 「라팔로」는 독일과 러시아의 단독 제휴 가능성을 가리키는 서방 외교의 경계 어휘로 굳어졌다.

상세

제노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22년 봄 제노바 회의는 전후 유럽 경제의 재건을 논의하기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까지 초청한 첫 대규모 국제회의였다. 신경제정책으로 문호를 연 소비에트 정부에게는 국제 무대 복귀의 기회였지만, 협상은 제정 러시아의 채무 상환과 국유화된 외국 자산의 보상 요구에 걸려 표류했다. 그 교착의 한가운데서 외교인민위원 치체린은 회의장 바깥의 다른 왕따, 독일과 밤사이에 접촉해 인근 휴양지 라팔로에서 단독 조약을 성사시켰다.

조약은 무엇을 바꾸었나?

두 나라는 전쟁 배상과 채무 등 상호 청구권을 포기하고 대사급 외교 관계를 복원했으며 통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다. 독일은 소비에트 정부를 법적으로 승인한 첫 유럽 강대국이 되었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열강의 공동 전선에 균열을 내며 고립의 포위를 깼다. 조약 자체에는 군사 조항이 없었지만, 그 그늘에서 두 나라 군부의 비밀 협력이 자랐다. 베르사유 조약이 금지한 독일군의 전차·항공 훈련이 소련 영내에서 이루어졌고, 소련은 그 대가로 독일의 군사 기술을 얻었다.

「라팔로」는 왜 하나의 상징이 되었나?

라팔로는 조약 이상의 것이 되었다. 유럽의 두 소외 국가가 서방을 젖혀 두고 손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 기억은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에서 최악의 형태로 되살아났고, 냉전과 그 이후의 서방 외교에서도 독일과 러시아의 단독 접근을 경계하는 관용어로 살아남았다. 소련 외교사의 관점에서 라팔로는 치체린 시대 실용 외교의 최대 성취이자, 이념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계산으로 국가의 활로를 연 초기의 모범 사례로 기록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E. H. Carr, German-Soviet Relations between the Two World Wars, 1919–1939 (1951)
  2. Richard K. Debo, Survival and Consolidation: The Foreign Policy of Soviet Russia 1918–1921 (1992)
  3. Adam B. Ulam, Expansion and Coexistence: Soviet Foreign Policy 1917–73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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