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e des Mehrwerts (Mehrwertrate), Exploitationsgrad der Arbeitskraft · 1867–현재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 1권 7장 「잉여가치율」에서 정식화했다.)

잉여가치율

Rate of Surplus Value

잉여가치(s)를 가변자본(v), 곧 노동력을 사는 데 쓴 임금으로 나눈 비율(s/v). 노동일 가운데 노동자가 자기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만드는 필요노동과 대가 없이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잉여노동의 비율과 같으므로,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에 의한 노동력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라 했고 착취율이라고도 부른다. 생산수단에 쓴 불변자본까지 더한 투하자본 전체로 나누는 이윤율과는 다르다.

상세

착취의 정도는 어떻게 재나?

자본가가 얼마나 벌었는지는 보통 이윤율로 잰다. 100만 원을 들여 20만 원이 남았으면 20%다. 마르크스는 이 숫자가 노동자가 얼마나 착취당했는지를 가린다고 보았다. 남은 가치는 기계나 원료가 아니라 노동력에서 나오므로, 착취의 정도를 보려면 잉여가치를 노동력에 쓴 돈, 곧 가변자본과 견주어야 한다.

『자본』 1권 7장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를 들었다. 자본가가 500파운드를 내놓아 410파운드는 생산수단(불변자본 c)에, 90파운드는 노동력(가변자본 v)에 쓴다. 생산이 끝나면 생산물의 가치는 410 + 90 + 90 = 590파운드이고, 잉여가치(m)는 90파운드다. 흔히 하듯 90을 500으로 나누면 18%가 나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실제로 잉여가치율은 m/C나 m/(c + m)이 아니라 m/v, 곧 90/500이 아니라 90/90 = 100%이며, 겉보기 착취도의 다섯 배가 넘는다”고 썼다.

In der Tat aber ist die Rate des Mehrwerts nicht = m/C oder m/c + m, sondern = m/v, also nicht 90/500, sondern 90/90 =100%, mehr als das Fünffache des scheinbaren Exploitationsgrads.

왜 불변자본은 셈에서 빼나?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물 속에 그대로 다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가치, 마르크스의 말로 「가치생산물」은 590파운드가 아니라 v + m, 곧 180파운드다. 불변자본이 아무리 크든 작든 이 새 가치의 크기와 그 안의 잉여가치 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불변자본을 0으로 놓아도 잉여가치는 그대로라는 사고 실험으로 이를 보였다. 그래서 잉여가치가 얼마나 생겼는지를 보려면 불변자본을 빼고 잉여가치를 가변자본과만 견주어야 한다.

Das im Prozeß wirklich neu erzeugte Wertprodukt ist also verschieden von dem aus dem Prozeß erhaltnen Produktenwert, daher nicht, wie es auf den ersten Blick scheint, c + v + m oder 410 Pfd.St. + 90 Pfd.St. + 90, sondern v + m oder 90 Pfd.St. + 90 Pfd.St., nicht 590 Pfd.St., sondern 180 Pfd.St.

노동시간으로 바꾸면 무엇이 보이나?

노동일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의 가치, 곧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다시 만들어 내는 부분을 마르크스는 필요노동시간이라 불렀다. 그 시간은 노동자에게는 사회 형태와 상관없이 살기 위해 필요하고, 자본에게는 노동자의 존재가 자기 세계의 기반이므로 필요하다. 그것을 넘어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부분이 잉여노동시간이다. 노동력의 가치가 필요노동을, 잉여가치가 잉여노동을 정하므로 “잉여가치와 가변자본의 비율은 잉여노동과 필요노동의 비율과 같다.”

Der Mehrwert verhält sich zum variablen Kapital, wie die Mehrarbeit zur notwendigen, oder die Rate des Mehrwerts m/v = (Mehrarbeit)/(Notwendige Arbeit).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처음 2시간에 자기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만든다면(가정), 나머지 6시간이 잉여노동이고 잉여가치율은 6/2 = 300%다. 같은 노동자가 4시간에 임금분을 만든다면 4/4 = 100%다. 마르크스는 앞의 비율이 대상화된 노동의 형태로, 뒤의 비율이 흐르는 노동의 형태로 같은 관계를 표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또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다.”

Die Rate des Mehrwerts ist daher der exakte Ausdruck für den Exploitationsgrad der Arbeitskraft durch das Kapital oder des Arbeiters durch den Kapitalisten.

실제 공장에서는 얼마였나?

마르크스는 『자본』 2판에서 맨체스터의 한 공장주가 건넨 1871년 4월의 자료로 실제 방적 공장의 잉여가치율을 계산해 보였다. 1만 개의 뮬 방추를 돌리는 이 공장에서 원료 솜, 기계 마모, 석탄·기름 같은 보조재료를 합친 불변자본은 일주일에 378파운드, 임금은 52파운드였다. 실 1만 파운드를 510파운드에 팔았으므로 잉여가치는 510 - 430 = 80파운드다. 잉여가치율은 80/52, 약 154%였다. 하루 평균 10시간 노동으로 치면 필요노동이 약 4시간, 잉여노동이 약 6시간이라는 뜻이다.

Der Arbeitslohn beträgt 52 Pfd.St. per Woche. … 10.000 Pfd. = 510 Pfd.St., der Mehrwert also 510 - 430 = 80 Pfd.St.

비율과 크기는 어떻게 다른가?

잉여가치율은 착취의 정도를 나타내지만 착취의 절대적 크기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마르크스는 2판에 붙인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필요노동 5시간에 잉여노동 5시간이면 착취도는 100%이고 착취의 크기는 5시간이다. 필요노동 6시간에 잉여노동 6시간이면 착취도는 여전히 100%이지만 착취의 크기는 5시간에서 6시간으로 20% 늘어난다. 자본가가 얻는 잉여가치의 총량은 잉여가치율에 고용한 노동자 수를 곱한 것으로 정해지므로, 같은 잉여가치율이라도 더 많은 노동자를 부리는 자본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는다.

Obgleich exakter Ausdruck für den Exploitationsgrad der Arbeitskraft, ist die Rate des Mehrwerts kein Ausdruck für die absolute Größe der Exploitation.

잉여가치율은 어떻게 높아지나?

『자본』 1권 14장에서 마르크스는 두 길을 정리했다. 노동력이 그 가치대로 지불된다고 하면,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주어진 상태에서는 노동일을 절대적으로 늘리는 것으로만 잉여가치율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이 절대적 잉여가치다. 노동일의 길이가 정해져 있으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상대적 크기를 바꾸어야 하고, 이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노동생산성이나 노동강도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생활수단이 싸지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든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다.

Die Produktivkraft der Arbeit und ihren Normalgrad von Intensität gegeben, ist die Rate des Mehrwerts nur erhöhbar durch absolute Verlängrung des Arbeitstags

8시간 노동 가운데 필요노동이 4시간인 공장에서(가정) 노동일을 10시간으로 늘리면 잉여노동은 4시간에서 6시간으로, 잉여가치율은 100%에서 150%로 오른다. 노동일을 8시간으로 둔 채 생산성 향상으로 필요노동이 3시간으로 줄면 잉여노동은 5시간이 되어 잉여가치율은 약 167%가 된다. 실질임금이 오르면서도 잉여가치율이 함께 오를 수 있는 것은 이 뒤의 경우다.

임금 몫과는 어떤 관계인가?

주류 경제학은 잉여가치율 대신 국민소득 가운데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 곧 노동소득분배율(임금 몫)로 소득분배를 논한다. 마르크스의 기호로 쓰면 임금 몫은 새로 만든 가치 가운데 가변자본의 몫, v/(v + s)다. 잉여가치율을 e라 하면 임금 몫은 1/(1 + e)이므로, 잉여가치율 100%는 임금 몫 50%, 300%는 25%에 해당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런 표현 방식이 「노동」과 「자본」이 「함께」 번 소득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게 하므로 잘못이라고 보았다.

어떤 쟁점이 있나?

같은 비율로 로마의 노예나 중세의 농노가 착취당한 정도도 잴 수 있다. 부역이나 노예노동에서도 노동일은 자기를 위한 부분과 남을 위한 부분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율 m/v는 노동 착취도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역사적 형태다.

마르크스 자신은 잉여가치율과 착취율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고 보았다는 해석도 있다. 생산된 잉여가치와 판매를 통해 실현된 잉여가치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업이 적자를 낼 수 있고, 반대로 판매자 시장에서 가격이 크게 올라 노동 투입에 비해 지나치게 큰 이윤이 날 수도 있다. 장부상 이윤과 임금으로 잉여가치율을 계산하면 실제 착취도를 과대하거나 과소하게 잡을 수 있다는 이 지적은 노동조합의 임금 협상에서도 쓰였다. 실증 연구에서 국민계정 자료로 잉여가치율을 추정할 때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어떻게 가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같은 문제와 이어져 있다.

관련 인물

출처

  1. web.archive.org
  2. web.archive.org
  3. 위키백과 (영문)
  4. de.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