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대 (바벨)
Red Cavalry (Babel)
이사크 바벨이 1920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때 제1기병군을 따라다닌 경험으로 쓴 단편 연작(책은 1926년). 안경 쓴 유대인 지식인이 카자크들 틈에서 받아들여지려 애쓰는 이야기들로, 눈부신 문체로 잔혹함과 영웅심을 나란히 놓았다. 부됸니의 분노를 샀고, 1940년 작가가 총살된 뒤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상세
어떤 책인가?
서른 편이 넘는 아주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전쟁을 이룬다. 줄거리를 잇는 것은 화자 리우토프다. 정치 선전을 맡아 제1기병군에 온 유대인 지식인인 그는 자기 출신을 숨기지 않으면서 다른 성을 쓴다. 이야기들은 사건의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다. 처음 나온 순서와도 다르다. 그래서 책은 소설보다는 전선에서 잇따라 터지는 조명탄에 가깝다.
첫 편 「즈브루치강을 건너며」부터 이 책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시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양귀비 들판이 펼쳐지고 “오렌지색 해는 잘린 머리처럼 하늘을 굴러간다”. 밤에 도시에 닿은 화자는 약탈당한 유대인 집에 묵는다. 잠결에 소리를 지르니 임신한 여인이 깨우며 아버지를 그만 밀라고 한다. 이불을 걷으니 옆에 자던 노인은 죽어 있다. 목이 찢기고 얼굴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폴란드군이 그랬다고, 딸은 말한다. 이런 아버지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느냐고.
가장 널리 읽히는 「나의 첫 거위」에서 화자는 안경 때문에 카자크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그는 거위를 잔인하게 죽이고, 집의 여인에게 요리를 시킨다. 그제야 카자크들이 그를 받아 준다. 「게달리」에서는 유대인 잡화상 노인이 묻는다. 어느 쪽이 혁명이고 어느 쪽이 반혁명이냐고. 적군도 백군도 유대인에게 끔찍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쟁과 어떻게 만나나?
이 책의 밑바닥에는 실제 기록이 있다. 바벨은 1920년 부됸니 군을 따라다니며 일기를 썼고, 그것이 『1920년 기병대 일기』로 남아 있다. 지명은 거의 흠잡을 데가 없고,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1920년 6~9월의 날짜가 달렸다. 하지만 일기와 소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소설은 1920~1921년 1기병군 카자크 다수가 폴란드군과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군으로 넘어간 일은 말하지 않는다. 「과부」와 「전투 뒤에」에 ‘백카자크’가 잠깐 나오지만 어떻게 넘어갔는지는 침묵한다.
왜 부됸니가 화를 냈나?
1923~1924년 첫 이야기들이 오데사 『이즈베스티야』와 모스크바의 『레프』, 『붉은 처녀지』에 실리자 바벨은 단숨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인물들은 선전 포스터 속의 영웅이 아니었다. 인물의 원형 가운데 한 사람인 세묜 부됸니는 1924년 잡지 『10월』에 성난 글을 실었고, 고리키가 바벨을 변호하며 그와 논쟁했다. 군인들의 평이 다 같지는 않았다. 바실리 블류헤르는 “제1기병군의 눈부신 묘사”라고 했고, 비탈리 프리마코프는 바벨의 글을 기다린다고 편지를 보냈으며, 이오나 야키르도 그를 도왔다.
어떻게 사라졌다가 돌아왔나?
인물들의 원형이 1930년대에 “인민의 적”이 될 때마다 책은 고쳐졌다. 1936년 판에서는 총사령관 카메네프를 언급한 대목까지 빠졌다. 그해 검열 당국 글라블리트는 이 책을 비판하고 도서관에서 빼라는 지시를 비공개로 내렸다. 글라블리트의 판단은 이랬다. “기병들을 강도, 약탈자, 강간범으로 그렸다. 책은 예술적 가치가 없다.” 바벨은 1939년 체포되어 1940년 총살되었고, 그의 작품은 1950년대까지 금지되었다. 1954년 복권된 뒤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20개 넘는 언어로 읽힌다. 헤밍웨이는 “바벨의 글은 훌륭하다”고 했다. 책은 나치의 금서 목록에도 올랐다.
어떻게 읽을까?
한국어로는 『기병대』로 옮겨져 있다. 판본마다 수록 편이 조금씩 다르다. 바벨은 1926년 34편으로 책을 묶은 뒤 계속 고쳤고, 「아르가마크」가 1933년판에 들어갔으며, 1937년에 쓴 「입맞춤」은 생전의 어느 판에도 들어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