红色娘子军 · 1961

홍색낭자군

The Red Detachment of Women

1930년대 하이난섬의 여성 부대를 그린 셰진 감독의 1961년 중국 영화와, 이를 옮긴 1964년 발레 등의 작품. 도망친 하녀 우충화가 여성 부대의 병사로 자라는 이야기다. 발레는 혁명 모범극이 되었고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 때 공연되었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30년대 하이난섬 완취안강 근처의 예린자이 마을. 악덕 지주 난바톈의 하녀 우충화는 몇 번이나 달아나다 잡히고 끝내 밀림으로 도망친다. 남양 화교 상인으로 꾸민 공산당원 훙창칭이 그를 이끌어, 그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홍군 부대에 들어간다.

우충화의 마음에는 복수밖에 없다. 어느 작전에서 난바톈을 보자 성급하게 총을 쏘아 그를 놓치고 동료들까지 잃는다. 그는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군대는 사사로운 원수를 갚는 곳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하는 곳이라는 것을 배운다. 훙창칭은 전투에서 난바톈에게 붙잡혀 죽고, 우충화는 부대를 이끌고 주력군과 함께 마을을 쳐서 난바톈의 무장을 쓸어버린다.

실제 부대가 있었나?

있었다. 1931년 하이난섬에서 공산당이 지휘하는 중국 공농 홍군 제2독립사단에 여성 특무중대가 만들어졌다. 1933년 지도자들이 차례로 붙잡혔고, 1936년 시안 사건 뒤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그 뒤의 삶은 영화와 많이 다르다. 항일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국민당 군인과 결혼했다가 문화대혁명 때 박해받은 사람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혁명의 영웅인데 현실에서는 혁명의 대상이 된 셈이다. 마지막 생존 대원 루예샹은 201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중남군구의 창작원 량신이 1958년 하이난에서 쓴 시나리오는 8·1영화제작소에서 퇴짜를 맞은 뒤 여러 곳을 돌다가 상하이 톈마영화제작소의 셰진 눈에 들었다. 제목도 원래의 ‘충도 영웅화’에서 지금의 것으로 바뀌었다. 셰진은 촬영 직전에야 상하이희극학원 학생 주시쥐안을 주인공으로 찾아냈다. 영화는 1961년에 나왔고 1962년 제1회 백화상 작품상을 받았다. 주제가 「낭자군 연가」는 널리 불렸다. 다만 하이난의 극작가 우즈는 영화의 자료와 줄거리 대부분이 자기가 조직한 경극 대본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발레는 왜 더 유명해졌나?

1964년 9월 26일 베이징 톈차오극장에서 초연된 발레판 덕분이다. 같은 해 톈한이 경극으로도 옮겼지만 작가들이 박해받으며 묻혔고, 발레판은 장칭의 지원을 받았다. 장칭은 1965년 우충화의 이름을 우칭화로 바꾸고 작품의 중심을 훙창칭으로 옮겼다. 총을 든 발레리나들은 혁명 모범극의 상징이 되었고, 1972년 2월 닉슨이 베이징에서 이 공연을 보았다.

정작 만든 사람들의 운명은 무대와 달랐다. 첫 주역 바이수샹은 아버지가 국민당 군인이라는 이유로 문화대혁명 때 비판받아 노동 개조에 끌려갔고, 작곡가 우쭈창은 이름을 빼앗겼다. 지금도 작품의 값은 싸움거리다. 량신이 중앙발레단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내어 2015년 이겼지만 발레단은 판결을 거부했고, 최고인민법원은 2018년 ‘붉은 고전’의 공연을 중지시키는 판결을 내리지 말라고 각급 법원에 통지했다.

평가도 나뉜다. 모범극을 단순한 선전으로 보는 시각이 오래 지배했으나, 연구자 바버라 미틀러는 이 작품들이 사람들의 집단 기억과 미적 경험을 빚어낸 힘을 지녔다고 보았다.

관련 인물

출처

  1. zh.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