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квием (Анна Ахматова, 1935–1940) · 1935–1940

레퀴엠 (아흐마토바)

Requiem (Akhmatova)

안나 아흐마토바가 1930년대 후반 대숙청 때 쓴 연작시. 체포된 아들 레프 구밀료프에게 소포를 넣으려고 감옥 앞 줄에 선 어머니의 목소리로 그 시대의 어머니와 아내들을 대신해 말한다. 위험 때문에 시인은 믿는 사람들에게 읽어 준 뒤 원고를 태우곤 했다. 소련에서 전문이 실린 것은 1987년이다.

상세

어떤 시인가?

길지 않은 연작시로, 앞 두 장이 프롤로그이고 뒤 두 장이 에필로그이며 그 사이에 짧은 시들이 놓인다. 이 시에는 앞서 산문 몇 줄이 붙는데, 그것이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한다. 어느 날 감옥 앞 줄에서 누군가 시인을 알아본다. 뒤에 서 있던, 추위에 입술이 파랗게 질린 여인이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귓속말로 묻는다(거기서는 모두 귓속말을 했다). “이것을 글로 쓸 수 있나요?” “쓸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한때 그의 얼굴이었던 것 위로 미소 같은 것이 스쳐 간다.

시인의 목소리는 곧 모든 여인의 목소리가 된다. 앞의 시들에는 스트렐치 반란 때의 여인들처럼 지난날 어머니들의 목소리와 셰익스피어 비극의 한 장면 같은 대목이 지나간다. 5, 6번 시에 이르러 고통이 절정에 이른다. “열일곱 달을 나는 외친다, / 너를 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가릴 수 없다, / 누가 짐승이고 누가 사람인지.”

끝에서 시인은 자기 동상 이야기를 꺼낸다. 언젠가 이 나라에 내 기념비를 세운다면 바다 곁에도, 차르의 정원에도 세우지 말라고. 내가 삼백 시간을 서 있던 곳, 빗장이 열리지 않던 그 자리에 세우라고. 모두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명단을 빼앗겼다”고도 한다.

어떤 일을 겪으며 썼나?

1934~1935년에 첫 대목이 나왔다. 1935년 10월 24일 그의 사실혼 남편 니콜라이 푸닌과,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사이에 낳은 아들 레프 구밀료프가 체포되었다. 아흐마토바가 스탈린에게 청원하여 11월 4일 풀려났다. 더 큰 일은 1938년에 왔다. 레프가 다시 체포되었다. 그는 크레스티 감옥 앞에서 하루 17~19시간씩 줄을 서서 소포를 전하며 원고를 다듬었다. 아들은 수용소로 갔다가 전쟁터로 나갔고, 1949년에 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았다가 1956년에 풀려났다.

어떻게 살아남았나?

시가 위험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마토바는 믿는 사람들, 특히 리디야 추콥스카야에게 읽어 주고 원고를 태웠다. 1938~1940년에 가장 많이 쓰고, 1950년대 말에 다시 손질했다. 1960년대에 사미즈다트로 돌기 시작했고, 한 필사본이 국외로 나가 뮌헨에서 시인의 동의 없이 책으로 나왔다. 망명 작가 보리스 자이체프는 이 작은 책을 받고, 카바레 ‘떠돌이 개’에서 보던 그 가냘픈 여인이 이런 절규를 토해 내리라고 누가 짐작했겠느냐고 썼다. 전문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인 1987년 잡지 『10월』 3호와 『네바』 6호에 실렸다. 지금은 러시아 학교 필수 과정이다.

무엇이 뒤따랐나?

존 태버너의 「아흐마토바 레퀴엠」(1980), 보리스 티셴코의 레퀴엠(1966) 등 여러 음악이 이 시로 쓰였다. 이 시는 체포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의 기록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rustih.ru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