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수호주의
Revolutionary Defencism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와 임시정부의 멘셰비키·사회혁명당 다수파가 채택한 정치 노선으로, 혁명의 방어를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조건부로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쟁을 제국주의적 정복전쟁이 아니라 민주적 방어전쟁으로 규정하고, '병합 없는 평화'를 요구하면서도 독일과의 단독 강화는 거부했다. 이 노선은 전쟁을 혁명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와 정면 충돌했으며, 이라클리 체레텔리가 주요 이론가이자 대변자였다.
상세
배경
1914년 전쟁 발발 당시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의 다수는 반전 국제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각국 정부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사회애국주의'로 선회했다. 러시아에서는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대표적인 사회애국주의자였다. 이에 맞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위시한 국제주의자들은 침머발트·킨탈 회의를 통해 반전 운동을 조직했고, 일부는 '혁명적 패배주의'(자기 나라 정부의 패배를 통해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노선)를 주창했다.
2월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붕괴하자, 이전까지 국제주의자·침머발트파였던 많은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들은 입장을 바꾸었다. 전제정은 무너졌고 이제 혁명을 수호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체레텔리, 표도르 단, 아브람 고츠 등이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 섰다. 이들은 독일 제국주의의 승리가 혁명을 질식시킬 것이라 보았고, 따라서 혁명적 러시아의 방어 전쟁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레닌과의 충돌: '그런 정당이 있습니다!'
1917년 6월 4일(구력), 제1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혁명적 수호주의와 볼셰비키의 혁명적 패배주의의 충돌은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응축되었다. 체레텔리가 연단에서 "권력을 우리 손에 달라고 말하는 정당은 러시아에 없다"고 선언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레닌이 "그런 정당이 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이 짧은 교환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근본적 분열선(전쟁을 혁명의 방패로 볼 것인가, 혁명의 지렛대로 볼 것인가)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쇠퇴와 유산
임시정부의 6월 공세 실패와 코르닐로프 사건을 거치며 혁명적 수호주의의 정치적 설득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전쟁 지속에 대한 대중의 피로와 볼셰비키의 '즉각적 평화' 슬로건에 밀려, 10월 혁명 이후 이 노선은 역사적 패배를 맞았다.
혁명적 수호주의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전쟁과 혁명이라는 두 긴급 명령 사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딜레마의 고전적 사례로 남았다. 1914년 이전에는 반전 국제주의자였던 인물들이 혁명의 방어를 위해 전쟁 지속을 선택하는 패턴은 이후 다른 혁명 국면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account of the defencist/internationalist schism in European socialism during WWI, including the specific Russian variant of revolutionary defencism after February 1917, its main proponents (Tsereteli, Dan, Gots), and its relationship to the Zimmerwald movement.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Lenin's 'The Tasks of the Proletariat in Our Revolution' (1917), the defining contemporary critique of revolutionary defencism. Lenin identifies three trends (social-chauvinists, 'Centre', and true internationalists), places Tsereteli and Chkheidze in the 'Centre', and argues that revolutionary defencism is internationalist in word but defencist in deed.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article on 'Oborontsy' (Defencists), situating revolutionary defencism within the broader defencist current in Russian politics during WW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