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통치평의회
Revolutionary Governing Council (Hungary)
1919년 3월 21일부터 8월 1일까지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정부 구실을 한 최고 집행 기관. 구성원은 인민위원이라 불렸고 의장은 내내 거르버이 샨도르였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합쳐 만든 헝가리 사회당 사람들로 꾸려졌으며, 가장 큰 권위는 외무 인민위원 쿤 벨러에게 있었다. 평의회 공화국의 주요 조치는 이 기관의 명령으로 공포되었다.
상세
출범 때 15명이던 혁명통치평의회는 1919년 4월 7일부터 6월 24일까지 35명으로 헝가리 역사에서 가장 큰 정부가 되었고, 사퇴 직전에는 13명이었다. 인민위원 대부분은 옛 사회민주당 정치인이었고 나머지가 공산주의자였다. 4월 3일까지는 인민위원마다 대리가 있었으나, 대리와 인민위원의 일이 분명히 나뉘지 않아 대리가 인민위원으로 공문에 서명하는 일이 잦았다.
4월 2일 혁명통치평의회 제26호 명령으로 임시 헌법이 공포되자 평의회는 스스로를 다시 짰다. 인민위원 대리 직을 없애 대리들을 정식 인민위원으로 올렸고, 독일인·루신인 인민위원부를 뺀 각 인민위원부를 두 명에서 여섯 명의 인민위원이 함께 이끌게 했다. 5월 25일부터는 국민경제평의회가 농업·사회적 생산·공급·교통·재정의 다섯 경제 인민위원부를 흡수했다.
6월 14~23일의 연방 평의회 전국 대회는 헝가리 사회주의 연방 평의회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150명의 연방 중앙집행위원회를 뽑았으며, 이 위원회가 이튿날 새 혁명통치평의회를 맡겼다. 새 헌법은 통치평의회의 구성원을 인민위원으로 정하고, 통치평의회가 인민위원을 각 인민위원부와 국민경제평의회 각 국의 장으로 임명하며 그 명령은 연방 중앙집행위원회가 심사하게 했다. 의장 거르버이 아래 외무 쿤 벨러, 내무 런들레르 예뇌가 자리를 지켰다.
7월 말 루마니아군이 티서강을 건너 부다페스트로 다가오자 8월 1일 당 지도부와 혁명통치평의회의 합동회의가 사퇴를 결정했고, 평의회 공화국은 133일 만에 끝났다. 평의회는 「평의회 정부(Tanácskormány)」라고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