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憲政友会 · 1900–1940

입헌정우회

Rikken Seiyūkai

1900년 9월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총재로 창당된 일본 제국의 정당. 정당내각제 확립을 꾀했으며, 사이온지 긴모치·하라 다카시·다카하시 고레키요·다나카 기이치·이누카이 쓰요시 등 총재들이 내각을 조직했다. 1925~1931년 입헌민정당과 함께 양당제를 이루었으나, 1932년 5·15 사건 뒤 정당내각이 끊겼고 1939년 분열한 끝에 1940년 해산했다.

상세

제국의회가 열린 뒤 번벌 정부는 중의원 다수를 차지한 민당의 협찬 없이는 예산과 법률을 통과시킬 수 없었고, 원로 이토 히로부미는 정당내각제로의 이행을 모색했다. 1900년 9월 15일 헌정당(옛 자유당계) 등의 찬동을 얻어 이토를 초대 총재로 입헌정우회가 창당되어 중의원 152석으로 출발했고, 10월 제4차 이토 내각을 조직했다. 「당」이 아니라 「회」라 칭한 것은 국가 이익을 앞세운 이토의 정당관에서 나왔다.

1903년 이토가 추밀원 의장으로 옮기자 사이온지 긴모치가 총재가 되었고, 이후 약 10년 동안 가쓰라 다로의 번벌과 정우회가 타협하며 번갈아 정권을 맡는 「게이엔 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기 당은 사이온지·하라 다카시·마쓰다 마사히사의 집단지도로 운영되었고, 철도 국유화 등 적극 정책과 이권 배분으로 세력을 넓히며 미쓰이·야스다 등 대재벌의 지지를 얻었다. 1913년 다이쇼 정변 뒤 하라가 총재가 되었고, 1918년 쌀 소동 속에서 성립한 하라 내각은 첫 본격적 정당내각으로 꼽힌다.

1921년 하라가 암살된 뒤 다카하시 고레키요가 뒤를 이었으나 내분이 이어졌고, 1924년 도코나미 다케지로 등 과반이 탈당해 정우본당을 세웠다. 정우회는 제2차 호헌운동에 참여해 가토 다카아키 내각의 여당이 되었고, 1925년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총재로 맞았다. 1927년 다나카 내각이 섰으나 1929년 「만주 모 중대사건」 처리에 실패해 물러났고, 이누카이 쓰요시가 총재가 되었다. 1931년 12월 이누카이 내각이 성립했고, 1932년 2월 총선에서 정우회는 사상 최다인 301석을 얻었다.

1932년 5월 이누카이가 해군 군인들에게 암살된 5·15 사건 뒤 원로 사이온지는 「헌정의 상도」를 중단했고, 비정당 내각이 이어졌다. 정우회는 내각에 협력할지 맞설지 당론을 모으지 못했고, 1939년 혁신파(나카지마파)·정통파(구하라파)·중립파로 갈라졌다. 1940년 7월 16일 정통파와 통일파가, 7월 30일 혁신파가 해산함으로써 당은 사라졌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ja.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ja.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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