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를 버리고 일본은행 국채 인수로 일본을 대공황에서 가장 먼저 끌어낸 대장대신
에도에서 태어나 러일전쟁 때 외채 조달을 맡았고, 1911~1913년 일본은행 총재를 지냈다. 1913년 대장대신이 되며 입헌정우회에 들어갔고, 1921년 하라 다카시가 암살되자 총리와 정우회 총재가 되었으나 7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1927년 금융 공황 때 다시 대장대신을 맡았다. 1931년 12월 13일 이누카이 내각의 대장대신이 된 날 금 수출을 다시 금지해 금본위를 버렸고, 1932년 11월부터 일본은행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게 해 농촌 구제 공공사업과 만주 전비를 댔다. 일본은 1932년부터 다른 나라보다 빨리 회복했다. 경기 과열을 걱정해 1934년부터 군사비를 줄이려다 군부와 부딪쳤고, 1936년 2월 26일 반란 장교들에게 살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1.06.01–1913.02.20일본은행 총재
- 1913대장대신, 입헌정우회 입당
- 1921.11.13–1922.06.12총리·입헌정우회 총재
- 1927–1929다나카 내각 대장대신
- 1931.12.13–1936.02.26대장대신, 금 수출 재금지와 일본은행 국채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