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불라 학살
Rumbula massacre
1941년 11월 30일과 12월 8일 라트비아 리가 남쪽 룸불라 숲과 그곳으로 가는 길에서 유대인 약 2만 5,000명이 살해된 사건. 리가 게토의 라트비아 유대인 약 2만 4,000명과 베를린에서 실려 온 유대인 약 1,000명이 희생되었고,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프리드리히 예켈른이 지휘했다.
상세
독일·오스트리아 유대인을 리가 게토로 보낼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인리히 힘러는 우크라이나에서 바비 야르 학살 등을 지휘한 예켈른을 리가로 불렀다. 유대인을 노동력으로 쓰려던 국가판무관 힌리히 로제에게 힘러는 이것이 자기 명령이자 총통의 뜻이라고 전하게 했다. 일할 수 있는 남성은 「작은 게토」로 따로 갇혔고, 여성과 어린이, 노인은 10km를 걸어 미리 파 둔 구덩이로 끌려갔다. 사격은 예켈른의 독일인 대원 10~12명이 했고, 아라이스 특공대 등 라트비아 보조경찰은 행렬을 몰고 지켰다.
바비 야르를 빼면 절멸수용소 가동 이전의 이틀간 학살로는 가장 컸다. 11월 30일 아침 가장 먼저 살해된 베를린 수송자 1,000명에 대해 힘러는 「청산하지 말라」고 전화로 지시했지만 이미 늦었다. 학살은 전후 뉘른베르크의 특수작전집단 재판의 근거가 되었고, 예켈른은 1946년 리가에서 교수형을 받았으며 빅토르스 아라이스는 1979년 서독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