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곤
Samogon
소련에서 농민과 도시 주민이 밀조해 마시던 강한 증류주로, 감자·곡물·사탕무·과일 등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자체 제작한 증류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사모곤은 국가 보드카 독점 아래에서도 소비에트 일상에 깊이 스며든 비공식 경제의 일부였으며, 특히 1985년 반알코올 캠페인으로 공식 주류 판매가 급감하자 생산이 폭증하며 설탕이 배급제에 들어가는 부작용을 낳았다. 캠페인이 후퇴한 뒤에도 사모곤은 농촌의 주요 주류 공급원이자 물물교환 수단으로 남아, 계획과 시장의 틈새를 메우는 소비에트 생활의 지속적 특징이었다.
상세
명칭과 기원
사모곤(самогон)이라는 말은 ‘스스로’를 뜻하는 접두사 сам-과 ‘몰아내다, 증류하다’를 뜻하는 동사 гнать에서 나왔다. 현재의 뜻으로 이 말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7년으로, 그전까지 불법 증류주는 흔히 ‘코르치마’(корчма, 밀주)라 불렸다. 제국 시기 이래 농촌에서 이어져 온 자가 증류 관행이 혁명과 내전기에 대규모로 확산하면서 ‘사모곤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사모곤은 감자·곡물·사탕무·과일·꿀 등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원료로 집에서 만든 증류기로 생산되었으며, 도수와 맛, 품질의 편차가 컸다. 미국의 문샤인과 달리 옥수수만이 아니라 다양한 원료를 썼고, 때로는 160프루프에 이르는 강한 술도 나왔다. 제조 과정에서 메틸알코올 등 유독 성분이 섞여 들어가 중독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혁명·소비에트 초기의 밀조와 교환 수단
소비에트 정권은 1914년 제정 러시아가 도입한 금주령을 계승해 1925년까지 유지했고, 1925년 스탈린이 국가 보드카 전매와 함께 이를 폐지했다. 그러나 전면 금지 아래에서도 밀조는 줄지 않았다. 1920년대 사모곤은 루블이 사실상 무가치해진 상황에서 교환 수단으로 기능했다. 농민들은 곡물을 제값에 팔 수 없으면 증류했고, 사모곤은 상하지 않고 운반과 분할, 은닉이 쉬웠다. 1923년 농촌을 시찰한 소비에트 대표단은 집을 지으려면 일꾼을 구할 수 없지만 사모곤이나 보드카를 대접하면 곧 집이 완성된다는 농민의 말을 기록했다. 농업·공업 가격이 벌어지는 ‘가위 위기’ 때마다 농촌은 밀주로 넘쳐났다.
이후 사모곤은 ‘블라트’(blat)로 불리는 상부상조·인맥·부탁의 체계와 결합했다. 주류를 확보하거나 대접하는 능력은 부족한 물자를 조달하는 수단이었고, 기업의 자재 조달 담당자(толкачи)는 생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보드카나 사모곤을 활용했다. 이렇게 사모곤은 계획경제의 공식 유통망 바깥에서 부족분을 메우는 비공식 경제의 일부가 되었다.
국가 전매와 법적 처벌
국가가 주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한 조건에서 사모곤은 불법이었다. 1948년 4월 7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결정은 판매 목적의 사모곤 제조·보관, 그리고 사모곤 제조용 기구의 제조·판매에 대해 재산 몰수와 함께 6~7년의 노동수용소형을, 판매 목적 없는 제조에 대해서는 1~2년의 자유형과 사모곤 및 제조 도구 몰수를 규정했다. 개인적 음용을 위한 제조를 금지하지 않게 된 것은 2002년 러시아 연방에서였다.
1985년 반알코올 캠페인과 사모곤의 폭증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인 1985년 5월, 소련 각료회의는 ‘만취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밀주 제조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했다. 평일 주류 판매 시간이 오후 2시에서 7시로 제한되고 600개 이상의 주류 생산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보드카·코냑·포도주 가격이 20~30% 올랐다. 공식 소비는 줄었지만 그 빈자리를 사모곤이 메웠다. 1985~1987년 설탕 판매량이 18%(약 140만 톤) 늘어난 것은 가내 증류 수요 때문이었고, 1988년에는 설탕이 배급제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농촌에서는 인구의 약 23%가 사모곤 생산에 종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밀조와 대체 알코올 남용이 늘면서 중독 사망도 증가했고, 발효 원료 부족과 유통 혼란 속에서 사모곤은 국가 공급 감소분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캠페인 이후와 현재
1988년 10월 공식적으로 캠페인이 중단된 뒤에도 주류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1990년대 초까지 사모곤은 농촌의 주요 주류 공급원이자 물물교환 수단으로 남았다. 포스트소비에트 경제 붕괴기에는 보드카나 사모곤 한 병이 사실상의 화폐로 통용되었고,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사모곤과 물물교환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오늘날 러시아 연방 법률은 개인 음용 목적의 사모곤 제조를 금지하지 않으며, 취미로 양조하는 장인 사모곤도 등장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definition, etymology, and legal status of samogon in the USSR (1948 criminal penalties, 2002 decriminalization in Russia)
- 위키백과 (영문) samogon consumption during the 1985–1988 Gorbachev campaign, with ~23% of the population engaged in production; sugar sales rose 18% due to home distilling
- in-formality.com Global Informality Project entry on samogon as medium of informal exchange (blat, pomoch') and peasant tradition, by Mark Lawrence Schrad, Villanova University
- pmc.ncbi.nlm.nih.gov Bhattacharya, Gathmann & Miller (2013): samogon estimation via excess sugar sales, its role in offsetting official alcohol reduction during the campaign
- 위키백과 (러시아어)
- in-formality.com
- 위키백과 (영문)
- pmc.ncbi.nlm.nih.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