伤痕文学 · 1978.08

상흔문학

Scar literature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1970년대 말 중국에서 나타난 문학 흐름으로, 문화대혁명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그렸다. 이름은 1978년 8월 11일 《문회보》에 실린 대학 신입생 루신화의 단편 「상흔」에서 왔다.

상세

「상흔」은 어떤 소설인가?

여성 홍위병 왕샤오화는 어머니가 ‘배신자’로 몰리자 관계를 끊고 시골로 떠난다. 아홉 해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죽어 있고, 이마에는 흉터가 남아 있다. 문화대혁명이 가족에게 입힌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첫 작품으로 꼽혀 큰 소동을 일으켰다. 지은이 루신화는 복단대학 1학년 학생이었고, 시골로 내려간 지식 청년과 군인을 거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이 이름이었나?

흐름은 그 전에 시작되었다. 작가 천뤄시가 1974년 홍콩에서 발표한 단편 「윤 현장」은 투항한 옛 국민당 대령이 현장이 되었다가 박해로 죽는 이야기로, 선구로 꼽힌다. 중국 안에서는 1977년 11월 류신우의 단편 「담임 선생」이 나와 “4인방에게 해를 입은 아이들을 구하자”는 외침으로 읽혔다. 그 뒤 「상흔」이 이름을 주었고, 구화의 『부용진』 등이 뒤를 이었다.

왜 금세 문제가 되었나?

곧 영화 시나리오 《고련》이 걸렸다. 바이화가 1979년에 발표한 이 대본에서 화가의 딸은 “아버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데, 이 나라도 아버지를 사랑하나요?”라고 묻는다. 1980년 찍은 영화 《태양과 사람》은 정치적 비판을 받고 상영 금지되었다. 공식 입장은 이런 문학을 ‘부르주아 자유화’로 보았고, 덩샤오핑은 “훌쩍훌쩍 울기만 해서는 소용없다”고 평했으며 《고련》을 지목해 비판했다.

평가는 왜 갈리나?

가장 혹독한 비판은 오히려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언어학자 지셴린은 회고록 『우붕잡억』 자서에서 상흔문학이 살갗이 벗겨진 정도를 다룰 뿐 진짜 상처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묻혀 있다고 썼다. 루신화 자신은 감정의 분출에 너무 기울었으니 단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학계의 시선은 다르다. 다이진화는 이 문학이 무고한 피해자와 사악한 세력의 비극이라는 틀로 역사를 고쳐 쓰고 가린, 성공한 이데올로기 작업이었다고 본다. 류푸성은 지식 청년과 홍위병 세대의 환멸을 담았다고 하면서도, 많은 작품이 돌아가려 한 곳은 5·4가 아니라 정통 혁명 전통이었다고 지적한다. 금기를 깬 문학으로도, 전환기의 이데올로기 작업으로도 읽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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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zh.wikipedia.org
  2. gypsyscholarship.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