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uxième indépendance / l'autre indépendance / rotaka · 1971–1975년(개념)

제2의 독립

Second Independence

1960년 프랑스가 부여한 독립은 명목상의 제1단계에 불과하다는 규정에서 나온 개념이다. 마다가스카르의 1972년 운동과 좌파 정당들은 협력협정 폐기와 경제·문화적 탈식민화를 내걸고 실질적 독립을 요구했다.

상세

개념의 형성

1960년 6월 26일 마다가스카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같은 해 체결된 협력협정이 프랑스의 군사·경제·문화적 존재를 계속 제도화했다. 제1공화국의 사회민주당(PSD) 정권은 이 협정을 유지했다. 1972년 5월, 독립 12년 뒤 청년 반란자들에 이어 학부모와 노동자가 합류해 "제2의 독립"(deuxième indépendance)을 요구하며 일어났다. 이들은 프랑스 존재의 지속에 반대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원했다. 이 운동은 1971년 4월 톨리아라주에서 시작된 농민 봉기와 그 뒤를 이은 학생 시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론적 틀과 요구

좌파 정당들과 정치적으로 성숙한 사회 세력은 1960년의 독립을 "탈식민화의 긴 경로 위의 첫 단계"로 규정하고, 독립은 "명목상"이었다고 보았다. 즉 "종이 위의 독립"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독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2의 독립'이라는 이론적·이데올로기적 틀이 형성됐다. 프랑스어권 학술·언론은 이 목표를 '다른 독립'·'제2의 독립'으로 불렀고, 요구의 핵심은 프랑스로부터의 '실질적 독립', 곧 경제·문화적 독립이었다.

구체적 내용

1972년의 중등학생 총파업은 프랑스와의 문화 협력협정 종식, 프랑스가 설계한 교육과정과 프랑스인 교원을 마다가스카르 프로그램으로 대체, 경제적으로 소외된 청년의 교육 기회 확대를 요구했다. 시위대는 프랑스와의 협력협정 취소와 교육의 마다가스카르화·민주화를 내걸고, PSD 정치 엘리트가 유지해 온 신식민적 경제·문화 관계를 규탄했다. 학생들은 조합적 요구를 넘어 '전면적 탈식민화'로 나아갔다. 즉 1960년 프랑스와의 협력협정 폐기를 통해 지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생산수단의 완전한 소유를 추구하고 마다가스카르인 소유의 틀(말가시화)을 세우려 했다.

운동의 전개와 귀결

이 요구를 실은 운동인 로타카는 1971년 4월부터 1972년 5월까지 이어진 농민·학생 시위로, 필리베르 치라나나 대통령 아래의 제1공화국을 붕괴시켰다. 1972년 5월 18일 치라나나가 사임을 발표하고 가브리엘 라마난초아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이어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국민투표로 세워진 과도 군사정권이 이어졌다. 라치라카는 여러 좌파 정당과 학생, 도시 노동자, 농민, 군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로 군부 동료들에게 여겨졌다. 1975년 12월 21일 국민투표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된 라치라카가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다.

평가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성숙한 사회 세력이 '제2의 독립'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틀을 만들어냈고, 이는 국가계획과 경제적 탈식민화를 내세운 제2공화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행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과도 군사정권을 거쳤고, 열망과 성과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프랑스어·영어 위키백과는 의과대학생 시위의 발생 시점을 각각 1972년 3월 24일과 1971년 3월 24일로 기록해 상충하므로, 특정 일자는 확정하지 않고 시기를 1971~1972년으로 적는다. 프랑스어 위키백과(rotaka, Révolution malgache), 영어 위키백과(Rotaka), 로APE 인터뷰, L'Humanité, Le Mouvement Social 초록, 미 의회도서관 국가연구를 근거로 삼았다. Blum 논문은 초록까지만 확인했고 원문은 접근이 막혀 인용하지 못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roape.net
  2. humanite.fr
  3. shs.cairn.info
  4. wildmadagascar.org
  5. fr.wikipedia.org
  6. 위키백과 (영문)
  7. countrystudi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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