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툴 처리이
Sfatul Țării
1917년 2월 혁명 뒤 베사라비아의 군인·농민·도시·소수민족 단체들이 대표를 보내 구성한 지역 의회. 이름은 「나라의 평의회」라는 뜻이다. 1917년 12월 4일 키시너우에서 열려 몰다비아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정부를 뽑았으며, 1918년 2월 독립을, 4월 9일 자치를 조건으로 한 루마니아와의 합병을 결의했다. 1918년 12월 정족수에 못 미친 회의에서 자치 조건을 버리고 해산했다.
상세
자치 의회 요구는 1917년 4월 키시너우의 협동조합 대회에서 처음 나왔고, 11월 몰도바 군인 대회가 베사라비아의 자치를 선언하며 의회 구성을 정했다. 의원은 보통선거가 아니라 단체별로 선출되었다. 처음 120석으로 정했다가 135석, 다시 150석으로 늘렸으며, 몰도바 군인 대회 44명, 몰도바 농민 소비에트 30명, 도시·젬스트보 21명, 정당 10명, 협동조합·노조·문화단체 16명, 소수민족 조직 29명이 배정되었다. 민족별로는 몰도바인 105명, 우크라이나인 15명, 유대인 13명, 러시아인 6명, 불가리아인 3명 등이었다. 의장은 사회혁명당원 이온 인쿨레츠, 부의장은 판 할리파였다. 처음 과반을 얻은 사람은 고참 민족운동가 이온 펠리반이었지만, 혁명을 지지하는 인물을 원한 소수민족 의원들과 러시아 국가 권위와의 연결을 고려해 인쿨레츠로 바뀌었다. 영어 위키백과가 인용한 당대 서술은 이 의회가 평시라면 대표 기관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주로 임명된」 기구였으나 무정부 상태에서 실제 통치 기관이 되었다고 평했다.
스파툴 처리이는 1917년 12월 15일 몰다비아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판텔리몬 에르한이 이끄는 총국장 위원회를 정부로 뽑았다. 러시아어 문서에 따르면 12월 말 에르한이 농민파 회의에서 루마니아군 도입 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고, 사회주의 블록은 항의하며 의회를 떠났다. 루마니아군이 키시너우에 들어온 뒤인 1918년 2월 6일 독립을 선언했고, 4월 9일 찬성 86, 반대 3, 기권 36, 불참 13으로 조건부 합병을 결의했다. 러시아어 문서는 표결 때 의사당이 루마니아군에 둘러싸여 있었고 공개 호명으로 진행되었다고 쓴다. 합병 뒤 인쿨레츠가 루마니아 정부에 들어가자 콘스탄틴 스테레가 의장이 되었다. 11월 토지개혁안이 승인된 뒤 12월 9~10일 밤 회의에는 125명 가운데 44명만 출석해 나머지 조건을 모두 버리고 의회 해산을 결의했다. 미국 학자 찰스 킹은 이 표결을 정당하지 않다고 보며, 루마니아 역사학은 스파툴 처리이를 베사라비아 자결의 기관으로, 소련 역사학은 점령군 아래의 기구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