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iff Act of 1930 (Smoot–Hawley Tariff Act) · 1930.06.17 (1934년 호혜통상협정법으로 협상을 통한 관세 인하가 시작되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Smoot–Hawley Tariff Act

1930년 6월 17일 미국 후버 대통령이 서명한 보호무역 관세법. 공화당의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의 이름을 땄다. 공황 초기에 미국 농업과 산업을 외국 경쟁에서 지킨다며 2만여 수입품의 관세를 올렸으나, 교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로 맞서 미국의 수출과 세계 무역이 급감했다. 1930년대 세계 경제가 관세 장벽과 통화 블록으로 쪼개지는 계기의 하나로 꼽힌다.

상세

1927년 국제연맹의 제네바 세계경제회의는 「관세를 끝내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왔다」고 보고했지만, 많은 나라가 오히려 관세를 올렸다. 1928년 대선에서 후버는 어려움에 빠진 농민을 위해 농산물 관세를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하원은 1929년 5월 농산물과 공산품 관세를 함께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 재무위원장 스무트는 관세를 올리면 과잉생산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미국은 무역 흑자국이었다.

1930년 5월 경제학자 1,028명이 후버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청원에 서명했고(최종 서명자는 1,250명이 넘었다), 자동차 기업가 헨리 포드도 이 법을 「경제적 어리석음」이라 부르며 반대했다. 그러나 후버는 공화당과 내각, 기업가들의 압력에 밀려 6월 17일 서명했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1929년 5월부터 이미 불매 운동이 일었고, 그해 9월까지 23개 교역국이 항의 각서를 보냈다. 1930년 5월 미국의 가장 가까운 교역 상대였던 캐나다가 미국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16개 품목에 새 관세를 매겼고, 쿠바·멕시코·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스위스도 보복 관세를 매겼다.

미국의 수입은 1929년 44억 달러에서 1933년 15억 달러로 66%, 수출은 54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61% 줄었다. 무역 감소의 대부분은 미국과 세계의 생산 급감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넘는 감소도 있었다. 항의만 한 나라로 가는 미국 수출은 18%, 보복한 나라로 가는 수출은 31% 줄었다. 경제학자와 역사가들은 대체로 이 법을 정책 실패로 보며, 지금도 보호무역의 경고 사례로 든다. 스무트와 홀리는 1932년 선거에서 모두 의석을 잃었다.

관세 전쟁은 세계 경제를 블록으로 나누었다. 영국은 1932년 오타와에서 자치령·식민지와 「국내 생산자가 먼저, 제국 생산자가 그다음, 외국 생산자가 마지막」이라는 원칙의 제국 특혜 관세를 맺었고, 1931년 금본위를 떠난 파운드에 통화를 묶은 나라들이 「스털링 지역」을 이루었다. 프랑스가 이끈 「금 블록」은 금본위를 지키면서 관세와 수입 할당을 강화했고, 독일은 외화를 쓰지 않는 쌍무 청산 무역망을 만들었다.

1932년 민주당은 관세 인하를 공약했고, 루스벨트 정부는 1934년 호혜통상협정법으로 대통령이 상대국과 쌍무 협상으로 관세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이 방식은 2차 세계대전 뒤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다자간 관세 인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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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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