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사회당 (1918–1921)
Socialist Party of Romania (1918–1921)
1918년 12월 11일 지하에서 나온 루마니아 사회민주당 당원들이 세운 사회주의 정당. 1919년부터 트란실바니아·바나트·부코비나의 사회민주당과 통합해 1921년 초 당원 4만~4만 5천 명에 이르렀다. 코민테른 가입을 둘러싸고 갈라져, 1921년 5월 대회에서 최대강령파 다수가 레닌의 21개 조건을 받아들여 사회주의·공산주의당(뒤의 루마니아 공산당)이 되었다.
상세
사회당의 뿌리는 1915년 크리스티안 라콥스키가 이끌며 치머발트 운동에 참여한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이다. 1916년 참전 뒤 금지된 이 당이 1918년 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이름을 사회당으로 바꾸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걸고 급진화한 노동운동을 지원했다. 창당 며칠 뒤인 1918년 12월 26일(구력 13일) 부쿠레슈티 인쇄공 시위에 군대가 발포하고 사회당 본부를 습격해 사무총장 일리에 모스코비치 등을 체포했다.
1919년 5월부터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 사회주의자들과 통합 협상을 벌여 1920년 10월 단일 규약을 채택했다. 1919년 선거에서 하원 7석, 1920년 선거에서 하원 19석과 상원 3석을 얻었으나 1920년 총파업 참여로 거센 탄압을 받았다. 기관지는 『사회주의(Socialismul)』였고, 1921년 초 전국 27개 지부에 등록 당원 4만~4만 5천 명을 두었다.
당을 가른 것은 코민테른 가입 문제였다.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간 대표단에게 부하린은 21개 조건 수용과 개혁파 축출, 『사회주의』의 공산주의 신문화를 요구했다. 게오르게 크리스테스쿠가 이끈 최대강령파는 1921년 5월 대회에서 가입 결의를 통과시키고 사회주의·공산주의당을 칭했으나, 5월 12일 군대가 대회장에 들이닥쳐 대의원 51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데알룰스피리 재판에 넘겨졌다가 사면되었고, 1922년 플로이에슈티 대회에서 루마니아 공산당을 정식으로 세웠다.
개혁파는 1922년 1월 사회당을 다시 세워 그해 5월 루마니아 사회주의 정당 연맹에 합쳤고, 1927년 5월 7일 연맹의 여러 집단이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으로 통합했다. 집권 뒤의 공산당은 자신을 사회당의 자연스러운 계승자로 그리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