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노프 수첩
Starinov Notebook
1942년 2월 23일, 이른바 '빙상 원정' 중에 스타리노프의 사보타주 부대가 타간로크만 북안에서 사살한 독일 공병 소령의 노획 수첩. 핵물리학자로 밝혀진 사망 장교의 수첩에는 우라늄 핵변환 공식과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동향을 시사하는 도표·계산이 담겨 있었다. 스타리노프를 통해 국방위원회 과학담당 전권대표 카프타노프에게 전달된 이 물증은, 플료로프의 경고 서한과 함께 소련 원자폭탄 계획 재개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상세
노획
1942년 2월, 로스토프나도누 일대에서 활동하던 스타리노프의 특수공병 부대는 아조프해 얼음 위를 건너 독일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이른바 '빙상 원정'을 되풀이했다. 그중 한 차례인 2월 23일 밤, 상사 막심 레핀(М. А. Репин)이 이끄는 부대가 타간로크만 북안의 코사 크리바야(현 도네츠크주 세도보) 수비대를 습격해 수비대를 격파하고 포로와 문서를 노획했다. 레핀은 다른 문서들과 함께 두꺼운 수첩 한 권을 가져왔다.
수첩에는 공식과 도표, 그림이 많았다. 스타리노프는 로스토프 대학의 독일어 교사들에게 판독을 맡겼다. 독일어를 읽는 한 소련 장교는 처음에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 여겼으나, 스타리노프는 이를 보관했다가 로스토프를 떠날 때 남부전선군 사령관 로디온 말리노프스키에게 보여주었다. 말리노프스키는 국방위원회 과학담당 전권대표 세르게이 카프타노프의 기구로 넘기라고 권했고, 스타리노프는 카프타노프의 기구에서 일하던 화학자 S. A. 발레진에게 전달했다. 발레진은 수첩의 내용이 공상이 아니라 원자에너지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에 관한 실제적 판단임을 확인했다.
소련 원자계획과의 관계
이 수첩은 게오르기 플료로프의 서한과 함께, 카프타노프가 아브람 이오페와 공동으로 국방위원회에 핵무기 문제를 다룰 과학센터의 설립을 건의하는 근거가 되었다. 카프타노프는 1985년에 발표한 회고에서 이 수첩과 플료로프의 경고가 자신과 이오페를 움직였다고 적었다. 국방위원회에서 고스플란을 비롯한 일부 부처가 반대했으나 스탈린은 해야 한다고 말했고, 1942년 9월 28일 '우라늄 작업 조직에 관한' 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소련 원자계획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다만 수첩을 결정적 단일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후대 연구는 수첩과 플료로프의 서한, 그리고 1941년부터 축적된 첩보자료가 함께 작용해 1942년 가을의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사료와 엇갈리는 서술
수첩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1985년 카프타노프의 회고를 통해서다. 스타리노프 자신은 1975년 1월 로스토프의 물리학자 이반 부일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획 경위를 처음 공개적으로 서술했고, 이 편지가 이후 연구의 기본 사료가 되었다.
서술 간 차이도 있다. 카프타노프는 회고에서 수첩을 우크라이나 유격대가 죽인 독일 장교의 것으로, 1942년 4월 스타리노프가 가져왔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스타리노프의 증언과 2018년 부일로의 연구는 노획 주체와 경로를 달리 서술하며 카프타노프의 기억을 부정확한 것으로 본다. 사망한 장교가 핵물리학자 한스 반데르벨데였다는 서술은 후대 문헌에 퍼졌으나, 여러 사료의 표현은 그가 공병부대 출신 독일 장교였다는 데 그친다. 노획물의 정확한 성격과 전달 시점에 대해서도 사료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이 항목은 이를 단정하지 않는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entry on Ilya Starinov detailing the 23 February 1942 raid on the Kosa Krivaya garrison, the capture of the notebook, identification of the dead officer as nuclear physicist Hans Vandervelde, delivery to Kaftanov, and the notebook's role as a 'trigger hook' for the Soviet atomic project.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entry with the full text of Starinov's January 1975 letter to Ivan Builo describing the raid, the notebook's contents (formulas, graphs, diagrams), its transfer via Malinovsky and Balezin to Kaftanov, and the subsequent decision to develop atomic weapons.
- history.milportal.ru Article by Sergei Builo in the Russian Defence Ministry's Military Historical Journal (2018), presenting for the first time the complete text of Starinov's letter and documenting Kaftanov's 1985 memoirs in Khimiya i Zhizn confirming that the notebook, together with Flyorov's warning, prompted Kaftanov and Ioffe to petition the GKO for an atomic research centre, leading to Stalin's 28 September 1942 order.
- spokesmanbooks.com Zhores Medvedev, 'Stalin and the Atomic Bomb', confirming 'the notebook of a major in the German engineers, who was killed not far from Taganrog, in February 1942' containing 'calculation and formulae which indicated an interest in the uranium bomb,' sent to Kaftanov.
- dokumen.pub David Holloway, Stalin and the Bomb (Yale, 1994), confirming that in April 1942 Colonel I.G. Starinov delivered a captured German officer's notebook from the southern shore of Taganrog Bay to Kaftanov's assistant S.A. Balezin.
- history.milportal.ru
- 위키백과 (영문)
- vorontsovopole.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