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убъективный метод в социологии · 1860년대–1917년

주관적 방법

Subjective Method in Sociology

나로드니키 이론가 표트르 라브로프와 니콜라이 미하일롭스키가 정립한 사회학 방법론으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연구자의 도덕적 이상(理想)에 입각하여 사실을 선택·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상 선택이 역사 진보의 궁극적 기준이며, '사실의 진리(правда-истина)'보다 '정의의 진리(правда-справедливость)'를 상위에 두었다. 레닌은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를 주관적 관념론이라 비판했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과학에 의해 학문적 주류에서 밀려났다.

상세

주관적 방법의 기원

주관적 방법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학의 주류였던 윤리-주관학파, 즉 주관학파가 사회 현실을 윤리적 이상에 비추어 파악하려 한 방법론이다. 그 출발점은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반발이었다. 나로드니키의 지도적 이론가 표트르 라브로프는 1868년 잡지 『현대평론』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용어를 처음 썼다. 콩트의 사회학이 사실의 분류와 계보 서술에 그치고 평가의 몫을 남겨 두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볼로그다 유형 시절에 쓴 『철학 서한』(1868–1869)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깨어나 민중의 고통을 인식하고 역사 창조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이론의 형성

라브로프는 실증주의에 주관적 방법이 정당하게 도입될 수 있다고 보았고, 1875–1876년 망명지의 잡지 『전진』을 통해 이 입장을 널리 알렸다. 그는 문명비판적 사회주의자로서 지식인이 민중에 빚을 졌다는 의식을 강조했다. 라브로프는 주관적 평가의 기준을 네 단계로 정리했다. 개인적 기준으로서 즐거움과 진리, 사회적 기준으로서 상호 이익, 그리고 최고의 기준으로서 정의가 그것이다. 정의의 관점에서 사회 제도를 비판할 때 그것이 무조건적 척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미하일롭스키의 종합

니콜라이 미하일롭스키는 1869년 『조국 잡기』에 발표한 「진보란 무엇인가?」에서 라브로프의 입장에 동조하며 자신의 주관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연구자가 미리 품은 견해를 완전히 버릴 수 없다고 보았다. 문제는 그 견해를 의식화하여 합리적 이론의 성격을 띠게 하는 데 있었다. 이른바 정신적·도덕적 자본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하일롭스키의 방법은 공감적 경험에 기초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관찰자가 정신적으로 관찰 대상의 위치에 서는 것이 주관적 방법이며, 이로써 방법의 적용 범위가 정해진다. 행위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타자의 사고와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해야 하며, 사회학에서 주관적 방법은 합법적이고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하일롭스키에 따르면 인간은 목표를 세우고 이상을 좇는 존재이며, 사회학은 개인의 발전과 사회적 진보가 일치하는 조건을 찾아야 했다.

확산과 논쟁

이 방법은 세르게이 유자코프로 대표되는 동조자들을 얻었다. 유자코프는 1872–1873년 잡지 『지식』에 발표한 「사회학 연구」에서 주관적 방법을 연구자의 도덕적 세계관, 즉 이상에 기초하여 현상의 상대적 중요성을 평가하고 그 기준으로 이론을 세우는 일로 규정했다. 다만 그는 이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보아 오히려 '객관적' 방법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점에서 미하일롭스키와 논쟁을 벌였다.

방법론적 의의와 한계

방법론 자체는 확정된 체계가 아니었다. 라브로프와 미하일롭스키는 모두 도덕적 이상의 체계화를 연구 과제로 삼았다. 주관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한 객관성이라는 구호는 미하일롭스키에게 환상이었다. 다만 양자는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회학의 학문적 관행과 대립했고, 그 결과 학파 내부에서도 방법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와의 대립

레닌은 1894년 저작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에서 미하일롭스키를 비롯한 자유주의적 나로드니키를 비판했다. 『자본론』 독해를 둘러싼 논쟁에서 미하일롭스키는 마르크스를 칭찬하면서도 정작 그 저작을 면밀히 읽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레닌이 문제 삼은 핵심은 사회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관점을 부정하고 이상의 실현 가능성만을 따지는 태도였다.

유산

1917년 이후 주관학파는 사회학사에서 밀려났고, 미하일롭스키의 명성도 크게 줄었다. 이 용어는 오늘날 러시아 사회학사 연구에서 '윤리적 주관학파'의 방법론을 가리키는 역사적 개념으로 남아 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Михайловскому наравне с П.Л. Лавровым принадлежит разработка идеи о свободном выборе «идеала»… Наиболее полное выражение эта идея получила в так называемом субъективном методе социологии
  2. encyclopedia2.thefreedictionary.com Great Soviet Encyclopedia (3rd ed.): "Subjective Method in sociology, an idealist treatment of historical knowledge… The founders of the subjective method were the Narodniki (Populists) P. L. Lavrov and N. K. Mikhailovskii"
  3.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Mikhailovsky's social philosophy, the hero-and-crowd theory, and his Narodnik theoretical contributions
  4. cyberlenink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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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az.lib.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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